[베를린 정착기 1] 베를린 입국
“다니엘님, 어디로 가세요?”
“베를린으로 갑니다.”
“네? 베를린이요?”
퇴사를 하며 내가 베를린으로 간다고 했을 때 대부분의 사람들이 보였던 반응이었다. 그렇게 우리 세 가족은 함께 베를린으로 향했다.

신기하게도 베를린은 독일의 수도임에도 한국에서 직항 비행기가 없다. 이는 베를린에 거주하는 한인 교민 수가 많지 않기 때문인 듯하다. 2023년 기준, 독일에 거주하는 한국 교민은 약 5만 명 정도인데, 이 중 약 10%인 5천 명 정도만이 베를린에 살고 있다고 한다. 베를린이 수도이자 가장 잘 알려진 도시임을 생각하면, 의외로 적은 숫자라 놀라웠다. 아무튼, 직항이 없는 덕분(?)에 우리는 헬싱키를 경유해 베를린으로 향하게 되었다.
원래는 총 12시간 정도 걸리는 비행이었지만,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으로 북극을 돌아가는 경로를 이용하게 되어 14시간이 걸렸다. 일본을 거쳐 베링 해협을 건너 북극해를 지나 헬싱키에 도착하는 긴 여정이었다. 그래도 헬싱키 경유는 나쁘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좋았다. 그 이유는 두 가지였다. 첫째, 밤 비행기라 비행 내내 아이가 숙면을 취할 수 있었던 것. 둘째, 헬싱키 공항이 정말 쾌적하고 아름다웠던 것.
아이는 탑승 후 한 시간쯤 기내식을 먹고, 도착 두 시간 전까지 거의 10시간을 쭉 잠들어 있었다. 이전에 달라스에서 인천으로 오는 비행 내내 칭얼거리던 기억이 있어, 이번에는 기필코 밤 비행기를 타야겠다고 마음먹었었다.
다행히 핀에어 밤편을 예약할 수 있었고, 덕분에 편안한 비행이 되었다. 핀에어의 넓은 레그룸도 일석이조였다.
헬싱키 공항 역시 기대 이상이었다. 공항 곳곳에 자작나무가 가득했고, 한국에서는 이케아에서만 간간히 느꼈던 북유럽의 감성이 곳곳에 가득했다. 아침 시간에 도착해서 바라본 잔잔한 하늘도 참 아름다웠다. 긴 비행으로 지친 몸과 마음이 잠시나마 편안해지는 순간이었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인데, 독일 입국 심사는 헬싱키 공항에서 이미 진행되었다. 처음에 짐 검사와 직업, 입국 사유를 꼼꼼히 물었던 이유가 바로 이것이었다.
헬싱키에서 다시 한 시간 반 정도 비행해 드디어 베를린에 도착했다. 나는 계획적인 성격과는 거리가 먼 극P형 사람이다. 하지만 처음 와보는 독일, 그리고 온 가족과 함께하는 이 여정이었기에 이번만큼은 여러 준비를 해두었었다. 그중 하나가 공항에서 집까지 이동할 택시를 미리 예약해두는 것이었다. 그래서 ‘Blacklane’을 통해 약 150유로를 내고 고급 밴을 예약했는데, 막상 도착해보니 기사 사정으로 예약이 취소되었다는 이메일이 와 있었다. 당황했지만 ‘어떻게든 되겠지’ 하는 마음으로 일단 짐을 찾고 공항 밖으로 나왔다.

다행히 공항 앞에는 여러 대의 택시가 대기하고 있었고, 우리 가족과 짐을 모두 실을 수 있는 밴 택시 기사님을 만날 수 있었다. 호기롭게 영어로 말을 걸었지만, 기사님은 거의 알아듣지 못하는 듯했다. ‘베를린에서는 영어만 써도 괜찮다’는 말을 수없이 들었는데, 막상 첫 순간부터 장벽을 느끼니 조금 아찔했다. 그래도 기사님은 매우 친절하셨고, 아이용 카시트도 준비해주셨다. 대화는 거의 할 수 없었지만, 40여 분 동안 조용히 이동하며 노엘이는 다시 잠에 들었다.

목적지에 도착한 뒤, 조심스럽게 독일어로 말했다. “Ist Kreditkarte ok?” (신용카드 괜찮나요?) 다행히 기사님이 내 짧은 독일어를 알아들으셨고, 결제도 문제없이 완료됐다. 베를린 택시는 한국처럼 미터기가 설치되어 있었고, 미터 요금에 소정의 팁을 더해 최종 금액을 지불했다. 30km 이동에 팁 포함 약 80유로. 한국에서 인천공항까지 70km를 이동할 때 드는 비용을 생각하면, 거리에 비해 두 배 정도 비쌌다. 베를린에서 택시는 급할 때만 이용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그렇게 우리는 우리의 새로운 집에 무사히 도착했다. 첫 보금자리는 베를린의 프렌츠라우어 베르그 (Prenzlauer Berg)라는 동네였다. 특별한 이유가 있었던 건 아니지만, 회사와 가까우면서 아이를 키우기에 가장 좋아 보이는 곳 같아 선택했다. 집을 구하는 이야기는 또 다른 글에서 자세히 풀어보려 한다.

우리 집 바로 앞에는 분홍빛 벚꽃나무가 심어져 있었다. 마치 우리를 환영하듯 활짝 핀 벚꽃이 참 인상적이었다. 베를린 곳곳에도 벚꽃나무가 있지만, 한국처럼 흔하지는 않고, 이렇게 길가에 심어진 경우는 드물다고 들었다.
아름답게 깔린 벚꽃잎을 밟으며, 우리는 조심스레 우리의 새로운 집에 첫걸음을 내디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