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아빠, 놀이터 가자!”

요즘 우리 아이가 가장 자주 하는 말이다.

베를린에는 놀이터가 정말 많다. 놀이터는 독일어로 Spielplatz (슈피엘플라츠)라고 하는데 직역하면 ‘놀이 장소’라는 뜻이다. 아래 지도에서 보듯 구글 맵에서 검색되는 집 근처 놀이터만 해도 스무 곳이 넘는다. 물론 지도에 표시되지 않는 작은 놀이터들도 많다. 골목을 걷다가 새로운 놀이터를 발견하는 재미도 쏠쏠하다. 독일에 온 지 약 2주가 지났는데 그동안 아이와 놀이터를 스무 번은 간 것 같다. 하루에 두 번, 혹은 그 이상 간 날도 있었다. 어쩌면 지금 우리가 독일에서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내는 장소일지도 모르겠다.

집 주변 가득한 놀이터들

주말에 직장 동료들에게 뭐할 거냐고 물으면 아이와 놀이터에 갈 거라는 대답이 심심찮게 들린다. 그리고 직장에사 베를린의 어느 놀이터가 좋은지 공유하는게 대화의 중요한 주제이기도 하다. 놀이터가 독일 사람들에게 얼마나 중요한 공간인지 실감하게 된다. 지난 2주간 독일 놀이터를 다니며 느낀 몇 가지 특징을 공유해보려 한다.

1. 모래가 가득한 놀이터
독일의 거의 모든 놀이터는 ‘모래 놀이터’다. 아직까지 우리가 가본, 혹은 지나친 모든 놀이터가 모래로 덮여 있었다. 한국이나 미국에서도 오래된 아파트 단지나 공공시설 일부에서는 모래 놀이터를 찾아볼 수 있지만 대부분은 그렇지 않다. 미국에서는 주로 우드칩, 한국에서는 재활용 고무 매트를 바닥재로 사용한다.

과거에는 한국과 미국에서도 모래 놀이터가 많았지만, ‘안전’을 이유로 점차 우드칩이나 고무 매트로 바뀌었다고 한다 (출처). 그런데 독일에서는 여전히 모래가 중심이다. 장난감 가게나 문구점에 가면 모래놀이 장난감이 가장 잘 팔린다는 것도 그 영향일 것이다.

놀이터에 가면 아이들이 저마다 바구니 가득 자기 모래놀이 장난감을 들고 와서 펼쳐놓는다. 우리 아이도 처음엔 어색해했지만 지금은 누구보다도 열심히 모래놀이를 즐긴다. 부모 입장에서는 아이가 놀이터에서 돌아올 때마다 옷이 엉망이 되는 게 처음엔 꺼려졌지만 아이가 신나게 노는 걸 보면서 이젠 별로 신경 쓰지 않게 됐다.

나 역시 어린 시절 모래 놀이터에서 뛰놀던 추억이 있는 세대로서 반가운 기분이 든다. 물론 모래는 미끄럽고 위생적인 걱정도 있지만, ‘안전’이라는 이유로 아예 놀이터에서 모래를 없애버리는 것이 오히려 아이들이 놀이터에서 누릴 수 있는 놀이 경험을 하나 없애는 건 아닐까 생각해보게 된다.

모래가 가득한 놀이터에서 모래놀이를 즐기는 아이들


2. 위험 천만한 독일의 놀이터
독일의 놀이터에는 정말 다양한 놀이기구들이 있다. 한국처럼 정형화된 놀이기구가 아니라 놀이터마다 각기 다른 개성과 구조를 갖추고 있어 보는 재미도 있다. 그런데 어떤 놀이기구를 보면 ‘이걸 정말 아이들이 타라고 만든 걸까?’ 싶을 정도로 높고, 가파르고, 위험해 보이는 것들도 있다.

알고 보니 이런 구조는 독일의 교육 철학과 관련이 있었다. 독일 놀이터는 아이들이 도전적인 구조물을 스스로 극복하며 위험을 배우고 성취감을 느끼도록 설계되어 있다고 한다 (출처). 실제로 우리 아이도 처음엔 놀이터에 있는 기구들을 타는 것을 무서워했지만 다른 아이들은 어떻게 타는지를 유심 관찰하기도 하고 또 직접 하나씩 도전해보면서 성취감을 느끼는 모습이 보였다. 아이의 신체적인 자신감도 함께 자라나는 것을 보면서 부모로서도 ‘아하’ 하는 깨달음이 있었다.

위험하게 생긴 죽은 물고기 뼈 모양의 놀이기구
어떻게 올라가라고 만든건지 모르겠는 미끄럼틀


3. 부모가 함께 놀아주지 않는 놀이터
또 하나 인상 깊었던 점은 대부분의 부모들이 아이들의 놀이에 개입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놀이터에 도착하면 부모들은 벤치에 앉아 책을 보거나 다른 부모들과 대화를 나눈다. 아이들은 아이들끼리 논다.

아이들은 서로 놀게 두고 부모들끼리 담소를 나누는 모습

심지어 아이들끼리 다툼이 생겨도 심각한 상황이 아니라면 부모가 개입하지 않는다. 한 번은 우리 아이가 다른 아이의 장난감을 가지고 놀다가 가볍게 다툰 적이 있었는데, 우리가 개입하고 미안하다고 사과하자 그 부모는 오히려 “괜찮아요, 아이들끼리 해결하게 놔두세요”라고 말했다. 처음엔 낯설었지만 이곳에서 우리도 부모로서 배워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아직 우리 아이는 독일어가 익숙하지 않아 친구들과 어울리기가 쉽지 않다. 그래서 우리는 종종 통역자 역할을 하며 옆에서 도와준다. 아직 다른 부모들과 자연스럽게 어울릴 수 있을 만큼 언어가 되지 않아 소외감을 느끼기도 하지만, 우리도 천천히 이 문화에 적응해가고 있다.

놀이터에 열심히 다니기 시작하면서 무엇보다도 놀라운 변화는 아이가 더 이상 유튜브나 영상을 찾지 않는다는 것이다. 신체를 써서 뛰어노는 놀이가 아이에게 얼마나 중요한지 새삼 느낀다. 놀이터는 단순한 장소가 아니라 아이가 자라고 배우고 사회성을 익히는 살아있는 배움터라는 생각이 든다.

“어? 아이가 기침을 안하네?”

독일에 도착한 지 일주일, 가장 크게 체감한 변화는 아이의 기침과 콧물이 사라졌다는 점이다. 우리 아이는 태어난 뒤 줄곧 모세기관지염과 코감기에 시달려왔다. 그래서 독일행은 우리 가족에게 아이의 건강을 위한 선택이기도 했다. 물론 베를린은 독일 내에서 공기가 아주 좋은 도시는 아니지만, 독일행을 고려하기 시작했던 작년 9월부터 올봄까지 대기질을 모니터링해 본 결과 미세먼지 수치는 늘 ‘좋음’ 수준을 유지했다. 실제로 숨을 들이쉴 때의 청량감이 확연히 다르다. 나뿐만 아니라 아내도 이 부분에 대해 자주 이야기한다. 그렇다면, 독일은 정말 친환경 국가일까? 독일의 환경에 대해 그동안 인상 깊었던 점들을 한 번 적어보고 싶다.

1. 상쾌하고 맑은 공기 💨
독일은 기본적으로 공기가 맑고 상쾌하다. 평생 비염에 시달렸던 내가 마음 놓고 숨을 쉴 수 있을 정도다. 실제로 2024년 IQAir 순위에 따르면 독일은 세계에서 35위, 한국은 79위를 기록했다 (출처). 순위만 보면 큰 차이가 아닌 듯하지만, 독일의 평균 초미세먼지 수치는 ‘좋음’, 한국은 ‘나쁨’ 수준이었다. 수치도 수치지만, 직접 느껴지는 공기의 질이 확연히 다르다. 특히 한 나라의 수도에서 이렇게 맑은 공기를 마실 수 있다는 사실은 놀라운 일이다.

베를린의 맑은 하늘


2. 도심 속 가득한 나무 🌳
두 번째로 인상 깊은 점은 도시 곳곳에 나무가 정말 많다는 것이다. 베를린은 처음부터 푸른 도시였던 것은 아니다. 전쟁으로 폐허가 된 후, 도시를 다시 푸르게 만들기 위한 노력의 결과다. 대표적인 예가 티어가르텐(Tiergarten) 공원이다. 210헥타르에 이르는 이 거대한 공원은 전쟁 이후 ‘나무 심기 운동’을 통해 오늘의 모습을 갖췄다고 한다. 수도의 중심을 녹지로 만든 결정은, 이 나라가 환경을 얼마나 중시하는지를 잘 보여준다.

베를린 중앙에 위치한 Tiergarten


3. 간편하고 실용적인 재활용 시스템 ♻️
재활용에 대한 인식도 한국과는 조금 다르다. 종이와 유리에 대해선 관대하지만, 플라스틱은 철저히 관리한다. 분리수거 방식도 비교적 단순하다. 보통 5개의 수거함이 있는데, ① 음식물, ② 종이, ③ 플라스틱+비닐+금속, ④ 일반 폐기물, ⑤ 유리로 나뉜다. 한국보다 훨씬 덜 복잡하다. 이처럼 단순한 이유는 포장재 대부분이 생분해성 재료이기 때문이다. 사용자보다 생산자가 책임을 지는 구조라는 인상을 받았다. 물론 생분해성 재료로 포장을 하기에 포장재가 부실하다는 인상은 종종 받는다. 하지만 이는 환경을 위해서 공동체가 함께 감내하기로 합의한 불편함이다.

독일 공동주택의 분리수거함

분리수거 시스템에 대해 또 한가지 좋은 점은 플라스틱병과 유리병에 대해서는 마트에 반납시 플라스틱의 경우 0.25유로를, 유리병에 대해서는 0.13유로를 현금 쿠폰으로 받을 수 있다는 점이다. 때문에 모두가 참 열심히 분리수거를 한다. 집에서 모은 병들을 형편이 어려운 사람들이 가져가라고 집 앞이 두는 모습들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병 반납도 어렵지 않다. 병 반납은 200 제곱미터 이상의 크기의 마트라면 모두 구비하고 있는 반납 기계에 병을 투입하면 자동으로 쿠폰을 발급해준다. 병들을 모아서 반납하는 재미가 쏠쏠하다.

19개 병을 반납하고 4.75유로 현금 바우처를 받았다.


4. 전기 절약이 몸에 밴 독일인들 💡
독일 사람들은 전기를 정말 철저하게 아낀다는 인상을 받았다. 낮에는 집은 물론, 카페나 심지어 회사 사무실에서도 불을 켜지 않는 경우가 많다. 불을 켜도 기본적으로 전등의 밝기가 굉장히 낮게 설정되어 있어서 처음엔 깜짝 놀랐다. 독일에는 밤새 반짝이는 네온사인도, 전광판도 없다. 어쩌면 독일인들이 전기를 아끼는 것이 아니라 한국에서 생활할때 전기를 과하게 썼던 것이 아닌가 반성하게 된다.

평일 낮 독일 회사의 오피스 내부


5. 자동차의 나라가 아닌 자전거의 나라 🚴
독일 하면 떠오르는 자동차 브랜드들이 있다. 그런데 독일 사람들은 운전보다 자전거를 즐긴다. 실제로 독일인의
40% 정도는 자전거를 주요 교통수단으로 삼고 있다 (출처). 그럴만도 한 것이 독일엔 모든 도로에 자전거 도로가 있으며 자전거를 타고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것도 용이하다. 또한 언덕이 많이 없어 자전거를 타고 쉽게 돌아다닐 수 있다. 자전거를 좋아하는 사람들에게는 천국과 같은 곳이다. 또한 환경과 건강, 비용에 대한 이유도 크다 (출처). 자전거를 탐으로써 온실가스 배출을 줄이고 건강도 챙길 수 있으며 저렴하다는 장점도 있다. 우리가 흔히 아는 벤츠나 BMW 같은 독일의 고급차들은 길거리에서 찾아보기가 어렵다.

자전거를 가지고 대중교통을 타기에 용이하다.



아쉬운 점
베를린의 환경에서 아쉬운 점이 있다면, 길거리 흡연자가 많다는 것이다. 그로 인해 간접흡연에 자주 노출되기 쉽다. 특히 카페나 레스토랑의 야외 좌석은 거의 흡연 공간처럼 느껴질 정도다. 한 통계에 따르면 약 4.1%의 독일인이 간접흡연에 노출되고 있다 (출처). 담배 연기는 엄연히 식물이 타면서 나오는 연기이기 때문에 이는 환경에 유해하지 않다는 인식이 있는 듯하지만, 베를린처럼 인구 밀도가 높은 대도시에서는 건강 차원에서 문제가 될 수밖에 없다. 다행히 독일도 흡연율을 줄이기 위한 정책과 흡연 구역 확대 등의 노력을 하고 있다.

아무튼 환경을 생각하면 독일은 참 살기 좋은 나라임에 틀림 없다.

베를린에 도착한 지 4일째, 벌써 느낀 점이 많지만 그중 가장 인상 깊었던 부분을 기록해두고 싶다. 지금까지 베를린에서 가장 놀랍고 또 좋았던 점을 꼽자면, 바로 ‘아이들에 대한 배려’가 아닐까 싶다. 가는 곳곳마다 아이들을 깊이 배려한 시설과 장치들을 발견하는 것도 하나의 즐거움이다. 뿐만 아니라, 만나는 사람들이 아이들을 대하는 태도에서도 따뜻한 배려가 느껴져 인상적이었다.

1. 카페에서 아이들을 위한 음료를 내어주는 베를린
베를린에 도착한 첫날, 우리는 짐을 푼 후 우리를 맞이해준 목사님 가정과 함께 집 근처 카페에 브런치를 먹으러 갔다. 집 바로 앞에 위치한, 테이블 네 개 정도가 놓인 작은 카페였다. 커피와 직접 구운 크루아상, 케이크, 그리고 몇 가지 브런치 메뉴를 판매하고 있었다. 우리는 프렌치토스트와 그릴드치즈를 주문했다.

베를린에서의 첫 식사

어른들은 각자 커피나 음료를 주문했는데, 베를린에는 한국처럼 아이들이 마시는 뽀로로 음료가 없다. 대신 대부분의 카페에서 아이들에게 무료로 ‘Babyccino’라는 따뜻한 스팀 우유를 제공한다. 점원에게 “Can we have a babyccino?“라고 요청하면, 따뜻한 우유 위에 코코아나 시나몬 가루를 살짝 뿌려서 내어준다. 한국에서는 카페나 몰에서 뽀로로 주스를 사 먹일 때마다 비싼 가격도 부담스러웠지만, 무엇보다 매번 건강하지 않은 음료를 먹이는 것 같아 마음이 무거웠다. 독일에서는 이런 작은 부분에서도 아이들을 세심하게 배려하고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키페에서 베이비치노를 마시는 아기들


2. 아이들이 할 놀이들이 곳곳에 구비되어 있는 베를린
베를린에서 또 한 가지 인상 깊었던 점은, 카페나 식료품점 등 다양한 공간에 아이들이 지루해하지 않도록 놀이 기구나 장난감이 마련되어 있다는 것이다. 한국에서는 아이를 카페나 쇼핑몰에 데려가면 난리를 피우지 않게 하려고 영상을 틀어주어야 하는 경우가 많았다. 하지만 베를린에 온 이후로는, 긴 시간 트램이나 지상철을 타야 할 때를 제외하면 외출 중에 아이에게 영상을 보여줄 일이 거의 없었다. 물론 모든 곳에 놀이 공간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생각보다 많은 곳에서 쉽게 찾을 수 있었다.

아이들이 그림을 그릴 수 있는 화이트보드가 비치되어 있던 카페
장보는 동안 아이들이 놀 수 있는 기구들이 되어 있는 식료품점
아이들 기저귀를 무료로 갈 수 있는 마트 내 기저귀 스테이션과 아이들이 끌고 다니며 놀 수 있는 어린이용 카트
아이들이 놀 수 있는 공간이 넓게 확보되어 있는 마트


덕분에 우리가 장을 보는 동안 아이도 지루하지 않고, 이것저것 만져보고 놀면서 즐거운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가끔 이미 다른 아이들이 놀고 있을 때는 나름의 질서를 지키며 함께 어울리는 모습도 볼 수 있었다.

3. 아이들을 향한 자연스러운 배려가 있는 베를린
한국에서는 아이를 데리고 유모차를 끌고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것이 거의 불가능에 가까웠다. 서울에서 불가피하게 몇 번 시도해본 적이 있었지만, 그때마다 아이도 나도 녹초가 되었던 기억이 있다.

베를린에서는 기본적으로 대중교통 내에서 아이들과 노약자를 위한 구역이 넓게 확보되어 있다. 버스나 기차가 모두 저상형인 것은 물론, 엘리베이터 동선도 잘 갖추어져 있어 유모차를 접어야 할 일이 거의 없다. 특히 인상 깊었던 것은 사람들의 태도다. 엘리베이터를 탈 때면 늘 유모차를 먼저 태워주었고, 대중교통 안에서도 자리가 없으면 자연스럽게 아이를 위해 자리를 양보해주었다. 이런 사소한 배려들이 모여 독일을 아이 키우기 좋은 나라로 만들어가는 것 같았다.

유모차나 휠체어가 쉽게 타고 내릴 수 있는 대중교통

2024년 기준, 대한민국의 출산율은 0.75명(출처: 통계청)이라고 한다. 독일의 출산율은 1.58명으로, 한국의 두 배가 조금 넘는다. 특히 동독 지역을 제외하면 출산율이 2명을 훌쩍 넘는다고 한다.

독일 사회의 이런 배려와 노력이 이곳을 아이 키우기 좋은 환경으로 만들어가고 있는 것 같다. 우리나라도 재정적 지원만이 아니라, 사회 전반의 인식이 아이들을 존중하고 배려하는 방향으로 변해간다면, 더 많은 부모들이 아이를 낳을 용기를 가질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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