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아빠, 놀이터 가자!”

요즘 우리 아이가 가장 자주 하는 말이다.

베를린에는 놀이터가 정말 많다. 놀이터는 독일어로 Spielplatz (슈피엘플라츠)라고 하는데 직역하면 ‘놀이 장소’라는 뜻이다. 아래 지도에서 보듯 구글 맵에서 검색되는 집 근처 놀이터만 해도 스무 곳이 넘는다. 물론 지도에 표시되지 않는 작은 놀이터들도 많다. 골목을 걷다가 새로운 놀이터를 발견하는 재미도 쏠쏠하다. 독일에 온 지 약 2주가 지났는데 그동안 아이와 놀이터를 스무 번은 간 것 같다. 하루에 두 번, 혹은 그 이상 간 날도 있었다. 어쩌면 지금 우리가 독일에서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내는 장소일지도 모르겠다.

집 주변 가득한 놀이터들

주말에 직장 동료들에게 뭐할 거냐고 물으면 아이와 놀이터에 갈 거라는 대답이 심심찮게 들린다. 그리고 직장에사 베를린의 어느 놀이터가 좋은지 공유하는게 대화의 중요한 주제이기도 하다. 놀이터가 독일 사람들에게 얼마나 중요한 공간인지 실감하게 된다. 지난 2주간 독일 놀이터를 다니며 느낀 몇 가지 특징을 공유해보려 한다.

1. 모래가 가득한 놀이터
독일의 거의 모든 놀이터는 ‘모래 놀이터’다. 아직까지 우리가 가본, 혹은 지나친 모든 놀이터가 모래로 덮여 있었다. 한국이나 미국에서도 오래된 아파트 단지나 공공시설 일부에서는 모래 놀이터를 찾아볼 수 있지만 대부분은 그렇지 않다. 미국에서는 주로 우드칩, 한국에서는 재활용 고무 매트를 바닥재로 사용한다.

과거에는 한국과 미국에서도 모래 놀이터가 많았지만, ‘안전’을 이유로 점차 우드칩이나 고무 매트로 바뀌었다고 한다 (출처). 그런데 독일에서는 여전히 모래가 중심이다. 장난감 가게나 문구점에 가면 모래놀이 장난감이 가장 잘 팔린다는 것도 그 영향일 것이다.

놀이터에 가면 아이들이 저마다 바구니 가득 자기 모래놀이 장난감을 들고 와서 펼쳐놓는다. 우리 아이도 처음엔 어색해했지만 지금은 누구보다도 열심히 모래놀이를 즐긴다. 부모 입장에서는 아이가 놀이터에서 돌아올 때마다 옷이 엉망이 되는 게 처음엔 꺼려졌지만 아이가 신나게 노는 걸 보면서 이젠 별로 신경 쓰지 않게 됐다.

나 역시 어린 시절 모래 놀이터에서 뛰놀던 추억이 있는 세대로서 반가운 기분이 든다. 물론 모래는 미끄럽고 위생적인 걱정도 있지만, ‘안전’이라는 이유로 아예 놀이터에서 모래를 없애버리는 것이 오히려 아이들이 놀이터에서 누릴 수 있는 놀이 경험을 하나 없애는 건 아닐까 생각해보게 된다.

모래가 가득한 놀이터에서 모래놀이를 즐기는 아이들


2. 위험 천만한 독일의 놀이터
독일의 놀이터에는 정말 다양한 놀이기구들이 있다. 한국처럼 정형화된 놀이기구가 아니라 놀이터마다 각기 다른 개성과 구조를 갖추고 있어 보는 재미도 있다. 그런데 어떤 놀이기구를 보면 ‘이걸 정말 아이들이 타라고 만든 걸까?’ 싶을 정도로 높고, 가파르고, 위험해 보이는 것들도 있다.

알고 보니 이런 구조는 독일의 교육 철학과 관련이 있었다. 독일 놀이터는 아이들이 도전적인 구조물을 스스로 극복하며 위험을 배우고 성취감을 느끼도록 설계되어 있다고 한다 (출처). 실제로 우리 아이도 처음엔 놀이터에 있는 기구들을 타는 것을 무서워했지만 다른 아이들은 어떻게 타는지를 유심 관찰하기도 하고 또 직접 하나씩 도전해보면서 성취감을 느끼는 모습이 보였다. 아이의 신체적인 자신감도 함께 자라나는 것을 보면서 부모로서도 ‘아하’ 하는 깨달음이 있었다.

위험하게 생긴 죽은 물고기 뼈 모양의 놀이기구
어떻게 올라가라고 만든건지 모르겠는 미끄럼틀


3. 부모가 함께 놀아주지 않는 놀이터
또 하나 인상 깊었던 점은 대부분의 부모들이 아이들의 놀이에 개입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놀이터에 도착하면 부모들은 벤치에 앉아 책을 보거나 다른 부모들과 대화를 나눈다. 아이들은 아이들끼리 논다.

아이들은 서로 놀게 두고 부모들끼리 담소를 나누는 모습

심지어 아이들끼리 다툼이 생겨도 심각한 상황이 아니라면 부모가 개입하지 않는다. 한 번은 우리 아이가 다른 아이의 장난감을 가지고 놀다가 가볍게 다툰 적이 있었는데, 우리가 개입하고 미안하다고 사과하자 그 부모는 오히려 “괜찮아요, 아이들끼리 해결하게 놔두세요”라고 말했다. 처음엔 낯설었지만 이곳에서 우리도 부모로서 배워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아직 우리 아이는 독일어가 익숙하지 않아 친구들과 어울리기가 쉽지 않다. 그래서 우리는 종종 통역자 역할을 하며 옆에서 도와준다. 아직 다른 부모들과 자연스럽게 어울릴 수 있을 만큼 언어가 되지 않아 소외감을 느끼기도 하지만, 우리도 천천히 이 문화에 적응해가고 있다.

놀이터에 열심히 다니기 시작하면서 무엇보다도 놀라운 변화는 아이가 더 이상 유튜브나 영상을 찾지 않는다는 것이다. 신체를 써서 뛰어노는 놀이가 아이에게 얼마나 중요한지 새삼 느낀다. 놀이터는 단순한 장소가 아니라 아이가 자라고 배우고 사회성을 익히는 살아있는 배움터라는 생각이 든다.

“어? 아이가 기침을 안하네?”

독일에 도착한 지 일주일, 가장 크게 체감한 변화는 아이의 기침과 콧물이 사라졌다는 점이다. 우리 아이는 태어난 뒤 줄곧 모세기관지염과 코감기에 시달려왔다. 그래서 독일행은 우리 가족에게 아이의 건강을 위한 선택이기도 했다. 물론 베를린은 독일 내에서 공기가 아주 좋은 도시는 아니지만, 독일행을 고려하기 시작했던 작년 9월부터 올봄까지 대기질을 모니터링해 본 결과 미세먼지 수치는 늘 ‘좋음’ 수준을 유지했다. 실제로 숨을 들이쉴 때의 청량감이 확연히 다르다. 나뿐만 아니라 아내도 이 부분에 대해 자주 이야기한다. 그렇다면, 독일은 정말 친환경 국가일까? 독일의 환경에 대해 그동안 인상 깊었던 점들을 한 번 적어보고 싶다.

1. 상쾌하고 맑은 공기 💨
독일은 기본적으로 공기가 맑고 상쾌하다. 평생 비염에 시달렸던 내가 마음 놓고 숨을 쉴 수 있을 정도다. 실제로 2024년 IQAir 순위에 따르면 독일은 세계에서 35위, 한국은 79위를 기록했다 (출처). 순위만 보면 큰 차이가 아닌 듯하지만, 독일의 평균 초미세먼지 수치는 ‘좋음’, 한국은 ‘나쁨’ 수준이었다. 수치도 수치지만, 직접 느껴지는 공기의 질이 확연히 다르다. 특히 한 나라의 수도에서 이렇게 맑은 공기를 마실 수 있다는 사실은 놀라운 일이다.

베를린의 맑은 하늘


2. 도심 속 가득한 나무 🌳
두 번째로 인상 깊은 점은 도시 곳곳에 나무가 정말 많다는 것이다. 베를린은 처음부터 푸른 도시였던 것은 아니다. 전쟁으로 폐허가 된 후, 도시를 다시 푸르게 만들기 위한 노력의 결과다. 대표적인 예가 티어가르텐(Tiergarten) 공원이다. 210헥타르에 이르는 이 거대한 공원은 전쟁 이후 ‘나무 심기 운동’을 통해 오늘의 모습을 갖췄다고 한다. 수도의 중심을 녹지로 만든 결정은, 이 나라가 환경을 얼마나 중시하는지를 잘 보여준다.

베를린 중앙에 위치한 Tiergarten


3. 간편하고 실용적인 재활용 시스템 ♻️
재활용에 대한 인식도 한국과는 조금 다르다. 종이와 유리에 대해선 관대하지만, 플라스틱은 철저히 관리한다. 분리수거 방식도 비교적 단순하다. 보통 5개의 수거함이 있는데, ① 음식물, ② 종이, ③ 플라스틱+비닐+금속, ④ 일반 폐기물, ⑤ 유리로 나뉜다. 한국보다 훨씬 덜 복잡하다. 이처럼 단순한 이유는 포장재 대부분이 생분해성 재료이기 때문이다. 사용자보다 생산자가 책임을 지는 구조라는 인상을 받았다. 물론 생분해성 재료로 포장을 하기에 포장재가 부실하다는 인상은 종종 받는다. 하지만 이는 환경을 위해서 공동체가 함께 감내하기로 합의한 불편함이다.

독일 공동주택의 분리수거함

분리수거 시스템에 대해 또 한가지 좋은 점은 플라스틱병과 유리병에 대해서는 마트에 반납시 플라스틱의 경우 0.25유로를, 유리병에 대해서는 0.13유로를 현금 쿠폰으로 받을 수 있다는 점이다. 때문에 모두가 참 열심히 분리수거를 한다. 집에서 모은 병들을 형편이 어려운 사람들이 가져가라고 집 앞이 두는 모습들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병 반납도 어렵지 않다. 병 반납은 200 제곱미터 이상의 크기의 마트라면 모두 구비하고 있는 반납 기계에 병을 투입하면 자동으로 쿠폰을 발급해준다. 병들을 모아서 반납하는 재미가 쏠쏠하다.

19개 병을 반납하고 4.75유로 현금 바우처를 받았다.


4. 전기 절약이 몸에 밴 독일인들 💡
독일 사람들은 전기를 정말 철저하게 아낀다는 인상을 받았다. 낮에는 집은 물론, 카페나 심지어 회사 사무실에서도 불을 켜지 않는 경우가 많다. 불을 켜도 기본적으로 전등의 밝기가 굉장히 낮게 설정되어 있어서 처음엔 깜짝 놀랐다. 독일에는 밤새 반짝이는 네온사인도, 전광판도 없다. 어쩌면 독일인들이 전기를 아끼는 것이 아니라 한국에서 생활할때 전기를 과하게 썼던 것이 아닌가 반성하게 된다.

평일 낮 독일 회사의 오피스 내부


5. 자동차의 나라가 아닌 자전거의 나라 🚴
독일 하면 떠오르는 자동차 브랜드들이 있다. 그런데 독일 사람들은 운전보다 자전거를 즐긴다. 실제로 독일인의
40% 정도는 자전거를 주요 교통수단으로 삼고 있다 (출처). 그럴만도 한 것이 독일엔 모든 도로에 자전거 도로가 있으며 자전거를 타고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것도 용이하다. 또한 언덕이 많이 없어 자전거를 타고 쉽게 돌아다닐 수 있다. 자전거를 좋아하는 사람들에게는 천국과 같은 곳이다. 또한 환경과 건강, 비용에 대한 이유도 크다 (출처). 자전거를 탐으로써 온실가스 배출을 줄이고 건강도 챙길 수 있으며 저렴하다는 장점도 있다. 우리가 흔히 아는 벤츠나 BMW 같은 독일의 고급차들은 길거리에서 찾아보기가 어렵다.

자전거를 가지고 대중교통을 타기에 용이하다.



아쉬운 점
베를린의 환경에서 아쉬운 점이 있다면, 길거리 흡연자가 많다는 것이다. 그로 인해 간접흡연에 자주 노출되기 쉽다. 특히 카페나 레스토랑의 야외 좌석은 거의 흡연 공간처럼 느껴질 정도다. 한 통계에 따르면 약 4.1%의 독일인이 간접흡연에 노출되고 있다 (출처). 담배 연기는 엄연히 식물이 타면서 나오는 연기이기 때문에 이는 환경에 유해하지 않다는 인식이 있는 듯하지만, 베를린처럼 인구 밀도가 높은 대도시에서는 건강 차원에서 문제가 될 수밖에 없다. 다행히 독일도 흡연율을 줄이기 위한 정책과 흡연 구역 확대 등의 노력을 하고 있다.

아무튼 환경을 생각하면 독일은 참 살기 좋은 나라임에 틀림 없다.

베를린에 도착한 지 4일째, 벌써 느낀 점이 많지만 그중 가장 인상 깊었던 부분을 기록해두고 싶다. 지금까지 베를린에서 가장 놀랍고 또 좋았던 점을 꼽자면, 바로 ‘아이들에 대한 배려’가 아닐까 싶다. 가는 곳곳마다 아이들을 깊이 배려한 시설과 장치들을 발견하는 것도 하나의 즐거움이다. 뿐만 아니라, 만나는 사람들이 아이들을 대하는 태도에서도 따뜻한 배려가 느껴져 인상적이었다.

1. 카페에서 아이들을 위한 음료를 내어주는 베를린
베를린에 도착한 첫날, 우리는 짐을 푼 후 우리를 맞이해준 목사님 가정과 함께 집 근처 카페에 브런치를 먹으러 갔다. 집 바로 앞에 위치한, 테이블 네 개 정도가 놓인 작은 카페였다. 커피와 직접 구운 크루아상, 케이크, 그리고 몇 가지 브런치 메뉴를 판매하고 있었다. 우리는 프렌치토스트와 그릴드치즈를 주문했다.

베를린에서의 첫 식사

어른들은 각자 커피나 음료를 주문했는데, 베를린에는 한국처럼 아이들이 마시는 뽀로로 음료가 없다. 대신 대부분의 카페에서 아이들에게 무료로 ‘Babyccino’라는 따뜻한 스팀 우유를 제공한다. 점원에게 “Can we have a babyccino?“라고 요청하면, 따뜻한 우유 위에 코코아나 시나몬 가루를 살짝 뿌려서 내어준다. 한국에서는 카페나 몰에서 뽀로로 주스를 사 먹일 때마다 비싼 가격도 부담스러웠지만, 무엇보다 매번 건강하지 않은 음료를 먹이는 것 같아 마음이 무거웠다. 독일에서는 이런 작은 부분에서도 아이들을 세심하게 배려하고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키페에서 베이비치노를 마시는 아기들


2. 아이들이 할 놀이들이 곳곳에 구비되어 있는 베를린
베를린에서 또 한 가지 인상 깊었던 점은, 카페나 식료품점 등 다양한 공간에 아이들이 지루해하지 않도록 놀이 기구나 장난감이 마련되어 있다는 것이다. 한국에서는 아이를 카페나 쇼핑몰에 데려가면 난리를 피우지 않게 하려고 영상을 틀어주어야 하는 경우가 많았다. 하지만 베를린에 온 이후로는, 긴 시간 트램이나 지상철을 타야 할 때를 제외하면 외출 중에 아이에게 영상을 보여줄 일이 거의 없었다. 물론 모든 곳에 놀이 공간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생각보다 많은 곳에서 쉽게 찾을 수 있었다.

아이들이 그림을 그릴 수 있는 화이트보드가 비치되어 있던 카페
장보는 동안 아이들이 놀 수 있는 기구들이 되어 있는 식료품점
아이들 기저귀를 무료로 갈 수 있는 마트 내 기저귀 스테이션과 아이들이 끌고 다니며 놀 수 있는 어린이용 카트
아이들이 놀 수 있는 공간이 넓게 확보되어 있는 마트


덕분에 우리가 장을 보는 동안 아이도 지루하지 않고, 이것저것 만져보고 놀면서 즐거운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가끔 이미 다른 아이들이 놀고 있을 때는 나름의 질서를 지키며 함께 어울리는 모습도 볼 수 있었다.

3. 아이들을 향한 자연스러운 배려가 있는 베를린
한국에서는 아이를 데리고 유모차를 끌고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것이 거의 불가능에 가까웠다. 서울에서 불가피하게 몇 번 시도해본 적이 있었지만, 그때마다 아이도 나도 녹초가 되었던 기억이 있다.

베를린에서는 기본적으로 대중교통 내에서 아이들과 노약자를 위한 구역이 넓게 확보되어 있다. 버스나 기차가 모두 저상형인 것은 물론, 엘리베이터 동선도 잘 갖추어져 있어 유모차를 접어야 할 일이 거의 없다. 특히 인상 깊었던 것은 사람들의 태도다. 엘리베이터를 탈 때면 늘 유모차를 먼저 태워주었고, 대중교통 안에서도 자리가 없으면 자연스럽게 아이를 위해 자리를 양보해주었다. 이런 사소한 배려들이 모여 독일을 아이 키우기 좋은 나라로 만들어가는 것 같았다.

유모차나 휠체어가 쉽게 타고 내릴 수 있는 대중교통

2024년 기준, 대한민국의 출산율은 0.75명(출처: 통계청)이라고 한다. 독일의 출산율은 1.58명으로, 한국의 두 배가 조금 넘는다. 특히 동독 지역을 제외하면 출산율이 2명을 훌쩍 넘는다고 한다.

독일 사회의 이런 배려와 노력이 이곳을 아이 키우기 좋은 환경으로 만들어가고 있는 것 같다. 우리나라도 재정적 지원만이 아니라, 사회 전반의 인식이 아이들을 존중하고 배려하는 방향으로 변해간다면, 더 많은 부모들이 아이를 낳을 용기를 가질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다니엘님, 어디로 가세요?”
“베를린으로 갑니다.”
“네? 이요?”

퇴사를 하며 내가 베를린으로 간다고 했을 때 대부분의 사람들이 보였던 반응이었다. 그렇게 우리 세 가족은 함께 베를린으로 향했다.

인천국제공항에서 만난 핑크퐁

 
신기하게도 베를린은 독일의 수도임에도 한국에서 직항 비행기가 없다. 이는 베를린에 거주하는 한인 교민 수가 많지 않기 때문인 듯하다. 2023년 기준, 독일에 거주하는 한국 교민은 약 5만 명 정도인데, 이 중 약 10%인 5천 명 정도만이 베를린에 살고 있다고 한다. 베를린이 수도이자 가장 잘 알려진 도시임을 생각하면, 의외로 적은 숫자라 놀라웠다. 아무튼, 직항이 없는 덕분(?)에 우리는 헬싱키를 경유해 베를린으로 향하게 되었다.

원래는 총 12시간 정도 걸리는 비행이었지만,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으로 북극을 돌아가는 경로를 이용하게 되어 14시간이 걸렸다. 일본을 거쳐 베링 해협을 건너 북극해를 지나 헬싱키에 도착하는 긴 여정이었다. 그래도 헬싱키 경유는 나쁘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좋았다. 그 이유는 두 가지였다. 첫째, 밤 비행기라 비행 내내 아이가 숙면을 취할 수 있었던 것. 둘째, 헬싱키 공항이 정말 쾌적하고 아름다웠던 것.

아이는 탑승 후 한 시간쯤 기내식을 먹고, 도착 두 시간 전까지 거의 10시간을 쭉 잠들어 있었다. 이전에 달라스에서 인천으로 오는 비행 내내 칭얼거리던 기억이 있어, 이번에는 기필코 밤 비행기를 타야겠다고 마음먹었었다.
다행히 핀에어 밤편을 예약할 수 있었고, 덕분에 편안한 비행이 되었다. 핀에어의 넓은 레그룸도 일석이조였다.

헬싱키 공항 역시 기대 이상이었다. 공항 곳곳에 자작나무가 가득했고, 한국에서는 이케아에서만 간간히 느꼈던 북유럽의 감성이 곳곳에 가득했다. 아침 시간에 도착해서 바라본 잔잔한 하늘도 참 아름다웠다. 긴 비행으로 지친 몸과 마음이 잠시나마 편안해지는 순간이었다.

헬싱키 공항에서 바라본 하늘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인데, 독일 입국 심사는 헬싱키 공항에서 이미 진행되었다. 처음에 짐 검사와 직업, 입국 사유를 꼼꼼히 물었던 이유가 바로 이것이었다.

헬싱키에서 다시 한 시간 반 정도 비행해 드디어 베를린에 도착했다. 나는 계획적인 성격과는 거리가 먼 극P형 사람이다. 하지만 처음 와보는 독일, 그리고 온 가족과 함께하는 이 여정이었기에 이번만큼은 여러 준비를 해두었었다. 그중 하나가 공항에서 집까지 이동할 택시를 미리 예약해두는 것이었다. 그래서 ‘Blacklane’을 통해 약 150유로를 내고 고급 밴을 예약했는데, 막상 도착해보니 기사 사정으로 예약이 취소되었다는 이메일이 와 있었다. 당황했지만 ‘어떻게든 되겠지’ 하는 마음으로 일단 짐을 찾고 공항 밖으로 나왔다.

베를린 공항 출구

 
다행히 공항 앞에는 여러 대의 택시가 대기하고 있었고, 우리 가족과 짐을 모두 실을 수 있는 밴 택시 기사님을 만날 수 있었다. 호기롭게 영어로 말을 걸었지만, 기사님은 거의 알아듣지 못하는 듯했다. ‘베를린에서는 영어만 써도 괜찮다’는 말을 수없이 들었는데, 막상 첫 순간부터 장벽을 느끼니 조금 아찔했다. 그래도 기사님은 매우 친절하셨고, 아이용 카시트도 준비해주셨다. 대화는 거의 할 수 없었지만, 40여 분 동안 조용히 이동하며 노엘이는 다시 잠에 들었다.

베를린 공항에서 시내로 이동중인 택시 안에서

 
목적지에 도착한 뒤, 조심스럽게 독일어로 말했다. “Ist Kreditkarte ok?” (신용카드 괜찮나요?) 다행히 기사님이 내 짧은 독일어를 알아들으셨고, 결제도 문제없이 완료됐다. 베를린 택시는 한국처럼 미터기가 설치되어 있었고, 미터 요금에 소정의 팁을 더해 최종 금액을 지불했다. 30km 이동에 팁 포함 약 80유로. 한국에서 인천공항까지 70km를 이동할 때 드는 비용을 생각하면, 거리에 비해 두 배 정도 비쌌다. 베를린에서 택시는 급할 때만 이용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그렇게 우리는 우리의 새로운 집에 무사히 도착했다. 첫 보금자리는 베를린의 프렌츠라우어 베르그 (Prenzlauer Berg)라는 동네였다. 특별한 이유가 있었던 건 아니지만, 회사와 가까우면서 아이를 키우기에 가장 좋아 보이는 곳 같아 선택했다. 집을 구하는 이야기는 또 다른 글에서 자세히 풀어보려 한다.

집 앞의 벚꽃나무

 
우리 집 바로 앞에는 분홍빛 벚꽃나무가 심어져 있었다. 마치 우리를 환영하듯 활짝 핀 벚꽃이 참 인상적이었다. 베를린 곳곳에도 벚꽃나무가 있지만, 한국처럼 흔하지는 않고, 이렇게 길가에 심어진 경우는 드물다고 들었다.

아름답게 깔린 벚꽃잎을 밟으며, 우리는 조심스레 우리의 새로운 집에 첫걸음을 내디뎠다.

설레는 마음으로 큰작씨를 처음 개척하기 위해 준비하던 것이 엊그제 같은데, 벌써 5년이 흘렀다.

교회를 시작하면서 제일 먼저 함께 고민했던 것은 문 앞에 어떤 환영의 문구를 걸어야 좋을까 하는 거였다. 고민 끝에 우리가 선택한 문장은 ‘있는 모습 그대로 오세요’였다. 지나가는 누군가가 그 문장을 보고 용기 내어 한 걸음 들어설 수 있기를 바랐고, 그렇게 되기를 기도하며 애썼던 것 같다.

지나고 보니 그 말이 제일 필요했던 사람은 나였던 것 같다. 세상은 나를 타이틀과 기준으로 바라봤지만 큰작씨에서는 척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의 나로 설 수 있었고, 지체들은 그런 나를 있는 그대로 받아줬다.

이제 큰작씨와 잠시 이별을 앞두고 마지막 예배를 함께 드리는데, 허전함과 슬픔 속에서도 마음 한켠엔 감사와 기쁨이 가득했다. 언제든 돌아갈 수 있는 가족 같은 지체들이 있다는 것이 큰 위로가 되었다. 다시 만날 날을 기대하며!

큰숲작은씨앗교회
www.seednetworkchurch.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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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께서 지금까지 내 삶을 얼마나 신실하게 인도해오셨는지를 되돌아본다. 지난 9년간 정말 쉼 없이 달려왔다. 그 여정을 돌아보면, 하나님의 은혜 없이는 도무지 설명할 수 없는 순간들의 연속이었고, 그분의 인도하심은 신비롭기까지 하다.

2016년, 졸업을 앞두고 진로가 정해지지 않아 막막했던 시절이 떠오른다. 오랫동안 준비했던 고시에 최종 탈락했고, 꿈도 희망도 없이 울며 겨자 먹기로 도전했던 취업이었다. 준비도 되어 있지 않은 상태에서 이력서를 넣는 족족 불합격 통보를 받았다. 지원했던 여러 스타트업에서도 역량 부족으로 거절당했다.

그랬던 내게, 생각지도 못했던 H사에서 합격 소식이 찾아왔고, 상상도 하지 못했던 기획실에서 첫 근무를 시작하게 되었다. 몇백 대 일의 경쟁률을 뚫고 합격하고, 다시 300대 1의 경쟁률을 뚫고 기획실에 단 세 명 중 한 명으로 선발된 건, 내가 어떻게 그 자리에 설 수 있었는지 지금도 이해할 수 없다. 하나님의 인도하심이 아니고서는 설명할 수 없는 일이다.

H사에 다니는 동안 결혼을 하고 가정을 이루었고, 이후엔 전혀 계획에 없던 M사로의 이직까지 허락하셨다. H사에서 나의 멘토와 같던 한 과장님의 소개로 M사를 처음 알게 되었고, 놀랍게도 선발 시험에서 다루어진 내용이 대학 시절 우연히 수강한 한 과목에서 배운 내용과 일치해 우수한 성적으로 통과할 수 있었다. 면접 과정에서도 하나님을 믿는 분들과의 만남을 통해 많은 위로와 확신을 얻었고, 결국 최종 합격까지 이르게 되었다.

내 실력 때문이 아니라,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혜로 인도하심을 경험한 시간이었다. M사에서 많은 것을 배웠고, 또 한 번 성장할 수 있었다. 감사하게도 이 시기에는 교회 개척에 참여하는 은혜도 주셨다.

정확한 계기는 기억나지 않지만, 이후 C사로부터 이직 제안을 받았다. 너무나도 다른 영역이었고 내 경험이 부족하다고 느껴 자신이 없었지만, 인터뷰 과정 내내 하나님께서 많은 지혜를 주셨다. 내 실력 이상으로 인터뷰를 마무리할 수 있었고, 결국 합격하게 되었다.

C사에서의 시간은 도전의 연속이었지만, 그만큼 많은 배움이 있었고, 이 시기 우리 가정에 노엘이라는 귀한 선물도 주셨다. 힘들고 고된 일이었지만 다양한 기회들을 허락하셨고, 생각지도 못했던 방식으로 전략 포지션에서 프로덕트 분야로 직무를 전환할 수 있는 기회도 주셨다. 유연한 근무 환경 덕분에 교회 개척에 더욱 집중할 수 있었고, 공동체를 섬기는 데에도 시간을 쏟을 수 있었다. 하나님께서 개척과 선교에 대한 마음도 계속해서 부어주셨다.

그리고 또 한 번, 예상치 못한 방식으로 D사에서 일할 수 있는 기회가 열렸다. C사에 있는 동안 여러 이직 제안들을 받았고, 스스로 지원한 자리들도 많았다. 연봉이 더 높은 곳으로 가고 싶었기에 여러 곳에서 면접들도 봤었지만, 결과는 좋지 않았다. 당시엔 왜 그랬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지만, 지금 생각해 보면 내가 스스로 무언가를 해보려고 할 때는 잘 풀리지 않았고, 하나님께 내 삶을 맡기고 인도하심을 따라갈 때는 예상치 못한 길이 열렸다.

D사로의 이직이 진행되는 가운데 그 과정 속에서도 하나님께서 강하게 인도하신다는 확신을 느꼈다. 그래서 결과와 상관없이, 하나님의 함께하심을 다시 경험할 수 있었다.

하나님께서 나를 D사로 보내시는 것은 나와 내 가정의 안위를 위한 이유만은 아닐 것이다. 분명 그분의 분명한 목적이 있을 것이다. 그것이 교회 개척일 수도, 함께 일하게 될 이들의 영혼을 향한 사랑일 수도, 혹은 디아스포라 사역일 수도 있다. 아직 정확히는 모르지만, 나는 하나님의 부르심에 응답하며 살고 싶다. 그 뜻이 무엇이든지 순종하고자 한다. 나의 뜻과 계획을 내려놓고, 내 삶의 주인이신 하나님께 내 삶을 온전히 맡겨 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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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로그에 마지막으로 글을 올린 게 언제였는지 까마득하다. 그동안은 앞만 보고 달리느라 뒤를 돌아볼 여유조차 없었다. 정말 많은 일들이 있었기에 어디서부터 어떻게 시작해야 할지 막막하지만, 천천히 조금씩 글을 써 내려가 보려고 한다. 부디 이 시간이 지치지 않고, 감사의 고백으로 가득 채워지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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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 : 참 빛이 있었다고 과거형으로 표현이 되었는데 그 빛이 비취어지고 있는 것은 현재 진행형으로 표현되어 있는 것이 놀라웠다. 나에게 처음으로 하나님의 빛이 비추어졌고 나의 어두움이 드러나게 되었을 때가 기억난다. 어둠과 빛은 절대로 공존할 수 없음을 다시 한 번 느낀다. 복음을 깨닫고 구원을 받은 사람은 어둠 가운데 거할 수 없다는 것이 위로가 된다. 이제 나도 내 안에 임한 이 빛을 이웃에게 비추는 삶을 살고 싶다. 때때로 어두움 속에 숨고 싶음을 느낄 때가 있다. 그 때 마다 나는 빛에 거하며 어두움에 거할 수 없다는 진리를 기억해야겠다. 공동체를 섬기면서 내가 드러나고 싶은 마음이 있는데 요한을 증거하는 자로 부르셨듯 나도 그렇게 예수님만 증거하는 삶을 살고 싶다. 


D : 12절에서 영접하는 자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다는 사실이 너무 놀랍다. 죽은 자를 그저 살리시는데 그치지 않고 당신의 자녀를 삼으시기까지 우리를 높이시고 존귀한 존재로 삼으셨다는 사실이 내게 큰 은혜가 된다. 그 진리를 잊지 말아야겠다. 하나님 안에서 내가 어떠한 자 되었는지 늘 기억하며 살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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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라. 


창세기 1장 1절 말씀이 떠오르는 말씀이다. 성부 아버지께서 천지를 창조하시기 전부터 말씀이신 예수께서는 그와 함께 계셨고, 아버지께서 천지를 창조하시는 그 순간에도 함께 하셨다. 예수의 하나님 되심, 즉 신성을 볼 수 있으며 동시에 예수께서 하나님과 함께 하심으로 관계 안에서 교제하신다는 것이 나타나있다. 



2 그가 태초에 하나님과 함께 계셨고


본질은 같으시지만 함께 계시며 교제하시는 관계 가운데 계신 하나님. 죄가 이 땅에 들어왔을때 죄로 인해 무너진 인간 안의 하나님의 형상 또한 관계성이었다. 하나님과 인간의 관계가 무너졌으며 인간과 인간의 관계가 무너졌던 것을 볼 수 있다. 



3 만물이 그로 말미암아 지은 바 되었으니 지은 것이 하나도 그가 없이는 된 것이 없느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창조주 되심을 말하고 있음. 이것은 특히 예수님의 성부 하나님 되심을 인정하지 않고 신성모독 혐의로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박은 유대인들에게 큰 의미를 지니는 선언이었다. 



4 그 안에 생명이 있었으니 이 생명은 사람들의 빛이라


예수 그리스도는 빛이 되셔서 인간의 가리워진 눈을 밝히심으로 참 진리를 보게 하신다. 그 진리는 곧 예수께서 하나님 되시며 구원자, 메시아가 되신다는 것이다. 죄와 어둠, 사망으로 가득했던 인간 세상에 빛으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를 가리키고 있다. 



5 빛이 어둠이 비치되 어둠이 깨닫지 못하더라 


(The light shines in the darkness, and the darkness has not overcome it) 지식의 영역에서 이해해야 하는 빛과 어둠의 개념으로, 참 진리로 예수께서 나타나셨으나 인간은 그 진리를 보지 못하였다. 인간의 rationalization, excuse, rejection. 



E: 어둠과 빛은 공존할 수 없는데, 나의 안을 들여다 보았을때 하나님의 빛이 생명이 되어 존재하는 자라면 내 안에 어둠이 있어서는 안될 것이다. 참 진리를 진리로 받아들이지 못하고 합리화하며 거부하는 죄된 마음이 있기 때문에. 말씀 앞에 씨름하며 내 안의 이러한 어둠이 소멸되기를 바란다. 특히 관계에 있어서 어려운 관계들을 합리화하여 남을 미워하는 죄를 짓지 않을 수 있도록. 


D : 인간의 마음에 참 진리가 주어졌음에도 불구하고 자꾸만 합리화하고 거부하는 마음이 있다. 입술과 지식으로만이 아니라 진정으로 진실되게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나의 주인으로 모시고 믿으며 살고 싶다. 세상은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보지 못하게 하는 여러 요소들이 가득하기 때문에 쉽지 않다. 주님의 은혜로 나의 가리워진 눈을 열어주시기를 기도한다. 


 

 

새해가 맞으며 창세기부터 성경 통독을 새로 시작했다. 창세기의 모든 말씀 중에 하나님께서 어떻게 아브라함을 택하시고 부르셔서 열국의 아비를 삼으셨는지 그 story를 따라가다보면 참 하나님의 은혜의 신비를 발견하게 된다. 


하나님께서는 지난 75년을 우상 숭배하며 살아오던 아브람을 어느날 갑자기 부르셔서 본토 친척 아비의 집을 떠나게 하시고 엄청난 축복을 약속하신다. 이 축복은 심히 한쪽으로 편중된 축복이었다. 아브람 쪽에서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고 심지어 우상을 숭배하며 살아왔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는 그를 축복하시겠다 말씀하셨다. 


그 말씀을 따라 가나안으로 떠난 아브람은 자기 자신이 살기 위해서 자기의 아내를 누이라고 속이고 바로에게 팔아 넘기는 엄청난 반인륜적인 범죄를 저지른다. 내가 만약 사라였다면 밀려오는 배신감에 다시는 아브람에게 돌아가지 않았으리라 다짐했을지도 모르겠다. 하나님은 이런 아브람을 물질로 축복하시고 또 자손의 축복을 주신다. 무어가 예쁘다고. 이후에도 멜기데섹을 통하여서, 또 직접 나타나셔서 아브람에게 일방적인 축복을 정말 퍼부어주신다. 그리고 그를 열국의 아비로 삼으시고는 아브라함이라는 새로운 정체성도 주셨다. 이후에 아브라함이 그랄 땅에 이르렀을때 다시 한번 자기 아내 사라를 자신의 누이라고 속이고는 그랄 왕 아비멜렉에게 넘겨버린다. 내가 진짜 사라였다면...... 


이후에 아브라함은 이삭을 낳고 여러 물질적인 축복들을 받았으며 또 후처들과 많은 자식들을 낳으며 여생을 마감한다. 예쁜 구석 하나 없고 말도 안되는 죄들을 지었던 아브라함이 무엇이 좋다고 하나님은 그에게 그렇게 많은 은혜와 축복을 부어주셨을까?


실로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는 그러하다. 우리의 어떠함 때문이 아니라 "전적"으로 하나님의 선하심으로 인한 것이 바로 하나님의 은혜다. 하나님께서 의롭게 보셨기 때문에 의를 얻은 것이지 실로 우리 측면에서는 할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다. 그래서 이 나아질 것 없는 인생, 참 곤고하다. 그렇지만 동시에 감사와 소망이 가득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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