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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의생각들

[연세대학교 최종건교수] 군사안보 뛰어넘어 ‘포괄안보’로 가자

부모는 “아이들”이란 그 한마디에 무엇이든지 할 수 있는 슈퍼맨이다. 부모들이 팽목항에서 차디찬 바다를 바라볼 뿐 아이들을 위해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무력감과 정부가 아이들을 구조하지 못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을 때의 그들의 절망은 그 누구도 형용할 수 없다. 많은 사람들이 진도 바다에서 죽었다. 그 사람들은 우리 국민들이다. 그 국민들이 국가의 구조를 기다리고 있을 때 국가는 구조의 손길을 내밀지 못했고 세월호는 침몰하였다. 우리를 더욱 아프게 하는 것은 그 국민들의 대부분이 고등학생들이었다는 것이다. 대부분의 국민들은 무기력한 마음과 구하지 못한 죄책감을 표출하고 있다. 정부의 무능력에 분노하기도 한다. 무기력과 죄책감 그리고 분노는 두시간 동안 침몰하는 세월호를 바라보았던 이들이 가질 수 있는 정당한 감정이며, 이러한 국민감정은 존중되어야 한다. 삼면이 바다인 국가의 국민으로서 바다는 평화롭기를 원했다. 그래야 분단된 반도가 평화로울 것이라고 믿었다. 대선 당시 북방한계선에 대한 논쟁으로 이득을 본 이 정권이 반도의 바다에서 더 이상 국민을 잃지 않기를 기원했다. 그러나 우리의 바다에서 아이들을 잃었다. 세월호 참사의 초점은 사건 당일 마른 땅 위에 두 발 딛고 서 있는 정부의 그 어느 누구도 죽음을 각오하고 물속으로 뛰어들어 아이들을 구하려 하지 않았다는 것에 있다.

NLL과 세월호 참사가 각각 상징하는 것

세월호 참사는 국가가 국민의 안전을 보장하지 못한 안전보장의 포괄적 실패로 규정되어야 한다. 그리고 이 참사는 우리에게 중요한 화두를 던진다. 연간 34조원을 국방비로 사용하는 국가가 자국의 앞바다에서 300여명의 국민이 수장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구출하지 못하였다. 이는 곧 국가가 바로 눈앞에서 국민의 안전을 보장하지 못하였다는 것을 의미한다. 북한의 군사적 위협은 현존하는 객관적 위협이다. 그러나 북한의 핵 개발로 인해 대한민국 국민의 목숨이 희생된 적은 없다. 하지만 우리는 한순간 국민 300여명의 목숨을 지키지 못한 것이다. 그렇다면 “대한민국한테 안보는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던질 수밖에 없다.

대한민국 헌법 69조는 “대통령은 취임에 즈음하여 다음의 선서를 한다. ‘나는 헌법을 준수하고 국가를 보위하며 조국의 평화적 통일과 국민의 자유와 복리의 증진 및 민족문화의 창달에 노력하여 대통령으로서의 직책을 성실히 수행할 것을 국민 앞에 엄숙히 선서합니다’”라고 규정하고 있다. 국가의 최고 통치권자의 첫째 의무가 바로 “헌법 준수”와 “국가 보위”라는 것을 분명히 알 수 있다. 여기서 국가 보위는 바로 안보를 의미한다. “국가를 보위한다”라는 대통령 취임 선서를 “국민 앞에 엄숙히” 거행하는 이유는 바로 국민이 1차 주권기관이기 때문이다.

안보는 ‘안전보장’이란 뜻이다. 객관적으로 국가가 추구하는 가치에 대한 위협의 부재 상태가 “국가의 안전이 보장된 상태”라는 뜻이다. 안보정책은 국가가 국민의 생명과 재산 그리고 생활방식을 보호하기 위한 일련의 정책이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국민은 세금을 국가에 납부하고 안전보장이라는 가장 기초적인 서비스를 제공받는다. 안보는 통상 타국의 군사적 위협으로부터 국가의 영토와 주권을 보호하는 것을 일반적 개념으로 사용하였고 이를 ‘전통 안보’라고 정의한다. 한편, 안보를 넓게 정의하는 ‘비전통 안보’라는 개념도 있다. 군사적인 것 이외의 비군사적 위협으로부터 국민의 생명과 재산 그리고 생활방식을 보호하는 국가의 행위를 비전통 안보라고 한다. 즉, 전쟁 이외에 인간의 생명을 위협할 수 있는 재난, 범죄, 환경변화 등으로부터 인간의 존엄을 지켜야 한다는 것을 비전통 안보라고 한다. 비전통 안보는 국가가 보호해야 할 국민의 존엄이 강제적으로 공격받을 두려움이 없는 상황이라고 정의할 수 있다. 전통 안보와 비전통 안보를 합쳐 포괄안보라고 지칭한다.

1999년 6월15일 제1연평해전에서 해군 장병 7명이 부상을 당했다. 2002년 6월29일 제2연평해전 때 6명이 전사하였으며 19명이 부상당했다. 2010년 3월26일 천안함 침몰사건 때는 해군 장병 40명이 전사하고 6명이 실종되었다. 2010년 11월23일 연평도 포격사건에선 해병 2명이 사망하고 16명이 중경상을 입었다. 지난 15년간 북방한계선 부근에서 발생한 북한과의 교전과 분쟁으로 인한 대한민국 국군 장병 사상자 수는 사망 48명, 실종 6명 그리고 부상 42명이다. 그리고 2014년 4월16일 진도 앞바다에 침몰한 세월호의 사망자 수는 300명을 넘을 것이다. 국가 안보를 위해 자신의 소중한 목숨을 희생한 장병들과 이번 세월호 참사에 자신의 생을 마감한 이들의 공통점이 있다. 이들 모두 대한민국 국민이라는 것이다.

북방한계선(NLL)이 전통 군사안보를 상징한다면, 세월호 참사는 비전통 안보를 상징한다. 따라서 “피와 죽음으로 사수하라”는 엔엘엘의 바다와 여객선이 평화롭게 다니는 진도 앞바다는 똑같이 국민의 안전을 보장하기 위해 국가가 지켜야 할 바다이다. 대한민국은 약 34조원을 국방비로 사용하고 있다. 이는 세계 12번째 많은 군사비를 사용하는 것이며, 아시아에서 중국과 일본 다음이다. 이는 북한과의 적대적 분단이 초래한 결과일 뿐만 아니라, 현실적 전통 안보가 강조되는 환경에 우리가 살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가 북한의 핵, 미사일, 국지도발, 무인기와 같은 전통 안보에 몰입되어 있었던 사이, 우리 해역에서 어처구니없는 사고로 국민들의 생명이 산화되었다. 이는 대한민국의 포괄안보에 구멍이 난 것이다. 포괄안보의 관점에서 전쟁으로 잃는 군인의 목숨과 평시 재난사고로 인해 지키지 못한 국민의 생명은 동등하게 소중하다.

문제는 이 정부의 안보관이 매우 구태의연하다는 것이다. 청와대 국가안보실은 대통령을 안보문제에 관해 직접 보좌하면서 중장기적인 안보전략을 수립하고 국가 위기상황에 신속하게 대응하기 위해 이 정부 출범과 함께 발족하였다. 그러나 청와대는 세월호 참사 초기에 국가안보실은 “재난 컨트롤타워가 아니다”라며 사고 수습 과정에서 발을 뺀다. 즉 개념적으로는 청와대 국가안보실의 안보관은 전통 안보만을 담당한다는 뜻이다. 그러나 좀 이상한 사실 앞에 우리는 당황스러워진다. 정부는 2013년 8월 ‘재난 및 안전관리 기본법’을 제정했고, 재난 업무의 총괄을 안전행정부에 맡긴다. 그러나 여전히 정부의 위기 대응 매뉴얼의 재난 컨트롤타워는 ‘청와대 국가안보실’로 되어 있다. 더욱이 국무총리실은 2013년 말 국가안보실에 ‘총체적인 국가 재난관리체계 강화 과제’의 이행실적이 좋다고 “가장 우수” 등급을 주었다. 실질적으로 박근혜 정부는 정부조직 차원에서 전통 안보와 비전통 안보를 구분하였지만 개념적으로는 여전히 국가안보실이 비전통 안보까지 관할한다는 뜻이다. 여전히 혼동스럽기는 하다.

세계 12번째, 연간 34조 군사비
북한 핵, 미사일, 무인기 같은
전통안보에 몰입돼 있던 사이
진도 해역서 어처구니없는 희생
포괄안보에 구멍이 난 것이다

안보 개념에 관한 최신 논의는
전통적 안보에서 복지·안전에
비중 두는 비전통안보로 확대
한데 안보계통 정책결정권자들이
군 장성 출신이라 깜깜한 걸까

패트리엇 미사일 비용을 생각하면…

결국 국가가 전시는 물론 평시에도 국민의 안전보장에 대처해야 한다는 측면에서 이번 참사 중에 국가안보실이 보여준 ‘안보’와 ‘안전’이 다르다는 발언과 청와대가 국가재난 컨트롤타워가 아니라는 주장은 사실상 정부의 헌법적 의무인 비전통 안보에 대한 안이한 의식을 지니고 있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더욱이 이는 현재 국제적으로 진행되는 “국가안보란 무엇인가”라는 최신 논의에도 어긋난다. 아마 이 정권의 주요 안보계통 정책결정권자들이 군 장성 출신들이기 때문에 나타나는 현상일지도 모르겠다. 안보의 개념에 관한 최신 논의는 현재 국가의 영토와 주권을 보호 대상으로 하는 전통적 안보에서 인간의 복지나 안전 문제에 비중을 두는 비전통 안보로 확대되고 있으며 이를 더 중시하는 경향이 있다. 즉, 국가의 주권이 존중되는 국제 정치환경을 고려할 때, 국가 내부에서 지속적으로 발생하는 인명 손실과 일상의 파괴를 방지하는 것도 국가의 의무라는 것이다.

더욱이 비전통 안보의 핵심은 바로 인간의 존엄을 중요하게 여기는 인간안보라는 것이 국제적 상식이다. 국가의 주권과 영토가 온전히 보전되고 있다 하더라도 국민의 온전한 일상이 국가의 내치력 부족으로 심각한 타격을 받을 경우 이 역시 안보의 문제로 인식되어야 한다. 즉, 국가간 발생하는 군사적 전쟁과 분쟁 이상으로 홍수, 지진, 가뭄과 같은 재난, 세월호 참사와 같은 대형 안전사고, 대규모 전염성 질병, 그리고 환경오염 등도 인간의 안보를 위협하는 중요한 요인이다. 이러한 안보 개념은 1994년 유엔개발계획(UNDP)이 발행한 ‘인간개발보고서’(the 1994 Human Development Report)가 발표되면서 사실상 비전통 안보의 중요성이 강조되기 시작하였다. 이 보고서에는 인간안보가 경제, 식량, 보건, 환경, 개인, 공동체 그리고 정치적 안보로 구성되어 있다고 제시한다. 인간안보는 인간의 안전과 존엄성 그리고 권리를 위협하는 요소들을 안보의 대상으로 규정하고 있다. 최근 유엔은 “국가는 인간안보를 실현할 유일한 행위자”라고 규정하기도 하였다. 곧, 국가는 시민들의 일상을 갑작스럽고 고통스럽게 파괴하는 위협으로부터 보호해야 할 의무가 있다는 것이다.

우리는 북한에 대한 군사적 위협과 대응을 강조하는 사이, 시민의 안전과 일상의 보호를 같은 수준에서 평가하고 있지 않은 것 같다. 즉, 적대적인 분단 상황에서 국가의 존립과 개인의 존엄 사이의 간극이 적나라하게 드러난 사건이 세월호 참사라고 할 수 있다. 북한이 발사할지도 모르는 미사일을 방어하기 위해 패트리엇 미사일에 1조3천억원을 투입해야 하고 차기 전투기 도입 사업에 9조원 이상의 예산을 쏟아부어야 하지만, 국민의 목숨을 현장에서 구조해야 하는 소방방재청 예산은 6400억원, 해양경찰청 예산은 1조1136억원에 불과한 것이 우리의 현실이다. 이것이 바로 우리가 처해 있는 포괄안보의 민낯이라고 할 수 있다.

국가가 가장 중요하게 여겨야 할 규범은 바로 시민의 생명을 소중히 여기는 것이다. 그것이 바로 민주주의와 민주정부의 본질이어야 하며, 국가는 이를 위해 상당량의 재원과 자원을 투자해야 한다. 따라서 국민은 자신의 생명이 위급할 때 국번 없이 전화번호 119를 돌린다. 국가가 최대한 빨리 몇분 안에 자신을 구조 및 구난해줄 것으로 기대하기 때문이다. 그 기대감이 국민이 일상을 온전하게 살 수 있는 근간이며 국민이 세금을 국가에 평생 내는 이유이기도 하다. 따라서 국가는 재난 발생 후 인명피해가 최소화될 수 있는 시간대인 “골든타임” 내에서 언제든지 출동할 수 있어야 한다. 이는 마치 북한이 공격할 경우 바로 우리 군이 대응해야 하는 원칙과 같은 것이어야 한다. 세월호 참사 당일 국가가 구조해주기를 기대했던 국민들은 세월호에서 119를 돌렸다. 그러나 당일 국가가 보여준 행태는 침몰해가는 세월호의 국민이 오히려 차분했다고 할 정도로 우왕좌왕했고 결국 너무 많은 국민이 죽은 것이다.

북한의 군사적 위협만 억지하면 뭐하나

정부의 행태는 반드시 등장하여 구조해야 할 시간대인 골든타임을 초과하는 무능함을 보였다. 이는 전통 안보 차원에서 북한군에게 우리 영토 일부를 내준 것과 같은 의미라고 할 수 있다. 게다가 청와대는 이 모든 것의 컨트롤타워가 아니라고 말한다. 이는 마치 북한과의 교전 시 국방부만 주무부서라고 이야기하는 것과 같다. 더욱이 위기 상황에서 국가리더십을 발휘해야 할 대통령은 전지적 작가 시점의 화법으로 실무자와 과거 정부를 탓했다. 특히 국가개조와 총체적 부실과 같은 헛구호를 남발하였다. 결국, 세월호 침몰 당시, 국민을 구조해야 할 국가가 없었다는 것이 세월호 참사의 핵심인 것이다.

세월호 참사가 우리에게 던져준 화두는 바로 정권을 바라보는 위기대응이 아닌 국민을 바라보는 위기대응 체계를 꾸준히 개발해야 한다는 것이다. 재난사고는 언제나 발생할 수 있다. 문제는 이 참사가 예전의 참사와 같이 책임자를 엄벌하는 선에서 종식된다면 다시금 제2의 세월호 참사가 발생할 수 있다는 것이다. 우리는 북한의 위협을 억지하는 데 성공할 수 있을지언정, 대한민국 영토 내에서 많은 국민을 잃을 수 있는 위협 속에서 살아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세월호 참사를 통해 이 정부는 대한민국의 안보관을 기존의 군사안보와 함께 비전통 안보인 인간안보를 소중히 여기는 포괄안보로 확대시켜야 한다. 이는 국민의 생명을 소중히 여겨야 할 국가의 의무이며 세월호에서 산화한 우리 아이들의 마지막 명령이다.

최종건 연세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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