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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의생각들

[아트센터나비 노소영관장] 교육의 위기(Crisis in Education)

아이비리그 대학 캠퍼스 풍경이 달라졌다. 새로 지어지는 건물은 예외 없이 과학과 공학, 또는 융복합 분야이며, 학생들의 구성도 팔방미인 백인에서 다국적 과학영재로 바뀌고 있다. 인문교육의 전당이자 서구 학문적 전통의 자존심인 아이비리그 대학들은 이제 과학기술의 메카로 탈바꿈 하고 있다. 지난 십 년간 이공계열 학생수가 크게 늘었다.

흥미로운 사실은 미국 전체 대학 평균은 이와 다르다는 것이다. 이공계 전공 비율이 지난 십 년간 다소 감소했다는 보고가 있다. STEM(Science, Technology, Engineering, Mathematics)과목을 신청했다가 드롭하는 비율이 높고 대학교육 자체도 중도에서 포기하는 사례도 많다고 한다. 가정환경이 어려울수록 STEM교육에 불리하다는 데이터도 있다.

우리는 양극화의 심화를 눈 앞에 보고 있다. 편중된 과학기술교육에의 접근은 양극화를 더욱 심화시킬 것이다. 양극화의 주범이 기술이기 때문이다. 고급기술에 접할 수 있는 소수의 엘리트와 그렇지 못한 대중간의 생산성 격차는 더욱 격화될 것이다. 이에 따른 소득의 격차도 커져만 갈 것임은 불을 보듯 뻔하다.

그런데 한국의 상황은 특이하다. 서울대 연대 고대 소위 SKY대학으로 대표되는 상위 대학 학생들이 과학기술분야를 기피한다. SKY대학에서 이공계열 지망자가 줄어 든 폭이 전국 대학 평균보다도 높다. 우리의 엘리트 학생들은 자발적으로 양극화의 해소를 위해 노력하는 걸까? 현실은 그보다 궁색하다. ‘똑똑한’ 한국의 젊은이들은 배우기도 힘들고 성공의 보장도 없는 이공계열에 매달리기 보다는, 상경계열이나 사회계열을 전공해 정부임용고시에 합격하는 ‘안전한’ 미래를 선호한다고 한다.

미래는 실리콘 벨리가 만들고 한국의 젊은 리더들은 그들이 던져주는 미래를 가지고 국가를 잘 운영해 보겠다는 건가? 과학기술을 모르면 21세기를 선도하기는커녕 이해조차 불가능하다. 현재 295명의 대한민국 국회의원 중 단 16명 만이 과학기술 분야 출신이다. 공무원 임용고시에 과학기술 과목을 강화하지 않으면 한국의 미래는 어둡다.

미래의 리더를 보는 나의 시선이 달라졌다. 지적 신체적 그리고 사회적 능력이 골고루 발달한 잘생기고 늠름한 젊은이들이 리더였던 시대는 저문 것 같다. 21세기의 리더는 컴퓨터와 친숙하고 수학과 과학에 뛰어난 영재들이다. 대인 커뮤니케이션 기술이 부족하다 해도 문제 없다. 새로운 커뮤니케이션 방식을 만들면 된다. 마크 져커버그, 세르게이 브린, 제프 베죠스 그리고 그들의 선배인 스티브 잡스가 그랬다.

그런데 이들 미래 리더들은 20대 초반에 자신에 관해 또는 세계에 관해 근본적인 질문을 할 시간이 없다. 배워야 할 과학기술 지식이 한도 끝도 없기 때문이다. 자고 나면 새로운 발견이 나오고 매년 새로운 전공이 생겨날 지경이다. 내가 누군지, 뭘 위해 살아야 하는지, 또는 어떤 세상이 바람직한 세상인지, 사회정의란 무엇인지, 이런 질문을 하지 못한 채 마크 져커버그나 스티브 쟙스 워너비가 되어간다.

이공계를 기피하는 대한민국 인재들을 보면 답답하고 속상하다. 하지만 과학기술에 올인하고 있는 글로벌 인재들은 나를 두렵게 한다. 인간의 정체성이나 사회체제에 관한 진지한 고민을 하지 않은 채 리더쉽에 오른 이들이 세상의 온갖 뒤엉킨 문제들을 어떻게 풀어낼까? 어느 날 갑자기 취득하게 된 엄청난 부와 힘을 어떻게 사용할까?

예컨대 이런 것이다. IS의 테러가 전세계적으로 확산된다 해보자. 미국의 리더들은 보안감시체제와첨단무기를 총동원해서 전자게임을 하듯 IS를 격퇴하려 할 것이다. 반면 한국의 리더들은 경찰관 수를 늘리고 외국인 노동자 입국을 금지할 것이다. 아무도 IS가 왜 테러를 자행하는 지 근본적인 질문을 하지 않을 것이다. 아니, 할 능력이 없다. 만약 IS가 각국의 정부를 위협할 정도로 득세한다 하자. 미국의 엘리트들은 화성으로 이주할 계획을 할 것이다. 따라가지 못하는 한국의 리더들은 IS 공화국법을 허겁지겁 제정하지 않을까? 교육이 이대로 가면 가능한 미래이다.

아트센터나비 노소영관장

저작권: Singularity 99 <http://www.singularity99.com/ko/articles/7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