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절

사명자는 일평생 하나님 앞에서 어린이와 같이 낮고 낮은 마음을 견지하고 사는 사람이다

1. 실패와 고난의 축복

제자들이 자기 능력 만을 믿고 밤새 그물질을 해서 많은 고기를 잡았다는 예수님의 말씀에 귀 기울일 수 없었을 것이다. 그들이 실패하자 그제서야 예수님의 음성이 들려오기 시작했다. 이렇듯, 실패와 고난은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의 말씀에 귀 기울이게 하는 시발점이 된다. 

2. 파이디온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을 부르실 때 "Children" "아이들" 원어로는 "파이디온"이라는 단어를 사용하셔서 부르셨다. 즉, 제자들을 영아, 유아, 가장 어린 아이라고 부르신 것이다. 제자들이 헛 그물질을 통해 아이와 같이 낮고 낮은 마음을 가지게 되었을 때 비로소 예수님께서 부르시는 음성이 들려지기 시작한 것이다. 사명자는 하나님께서 세워주실때에도, 축복하실 때에도 언제나 파이디온의 마음을 가져야 한다. 즉, 하나님 앞에서 겸손한 자세를 잃지 않아야 한다.

솔로몬이 하나님께 일천번제를 드리고 나서 하나님께 기도할 때 자신을 지칭할 때 "카톤"이라는 단어를 사용하였는데 이는 "출입을 하지 못할 정도로 작은 아이"라는 의미였다. 이토록 겸손한 솔로몬을 하나님께서는 높이셨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주신 축복을 더 사랑하여 하나님이 더 이상 필요 없는 가장 큰 어른이 되었다. 왕국이 분열되고 찢어지고 난 뒤에 쓰여진 솔로몬의 회개문인 전도서에 이르러서야 솔로몬은 비로소 다시 어린아이의 심정을 회복하였다.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성장한다는 것의 의미는 하나님과 맞먹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앞에서 더욱 파이디온이 되어 그 분만 우리의 삶에서 역사하시도록 하는 것이다.

4절

사명자는 하나님의 지금 현재 어떤 상황에서라도 함께 하신다는 것을 믿는 사람이다

1. 예수님을 과거형으로 두고 바라보지 못했던 제자들

날이 새어갈 무렵 예수님께서 바닷가에 서셨다(Jesus stood on the shore). 그렇지만 제자들은 예수님이신지 알지 못했다(they had not known that it was Jesus). 예수님께서 그 시점에서 현재형으로 서 계셨는데 제자들은 예수님을 과거형으로 두고 잊은 상태로 예수님을 바라 볼 생각을 하지 못했다. 

2. I am who I am

우리의 삶의 현장에서 주님이 보이지 않는 것은 우리가 과거에 우리에게 은혜를 베풀어주신 주님만 생각하기 때문이다. 칼 한자루 쥐어 주지 않으시고 출애굽을 명하시는 하나님께 모세는 '내게 이렇게 황당한 일을 시키시는 분이 누구십니까' 물었다. 하나님께서는 '나는 현재형으로 존재하는 현재, 나다'라고 대답하셨다 (I am who I am). 이 말을 믿고 모세는 이집트로 갔다. 하나님께서 바로 지금 이 순간에도 현재형으로 내 곁에 계시다는 것을 믿으며 사는 것이 사명자의 삶이다.

2-3절

사명자는 욕망의 바다에서 헛그물질 하지 않고 영원한 실체 건져 올리는 사람이다

1. 실체가 없는 욕망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디베랴에서 만나자고 하셨고 그 욕망의 바다에는 일곱명의 제자들이 나와있었다. 그들은 욕망의 바다를 보는 순간 그 욕망의 바다에서 밤새 그물질을 했다. 예수님께서 그 곳에 나타 나셨을 때에도 그들은 예수님을 알아보지 못할 정도로 그들의 시선이 욕망의 그물질에 사로 잡혀 있었다. 그 결과, 제자들은 아무 것도 잡지 못했다. 우리가 욕망 만을 따라 살게 될 때 평생 실체로 가질 수 있는 것은 아무 것도 없는 것이다. 세상에 보이는 것은 절대로 실체로서 우리의 것이 될 수 없다.

2. 리더십의 중요성

물고기를 잡으러 가겠다고 다른 제자들을 주동했던 사람은 3년 간 예수님을 따랐던 베드로였다. 우리가 누군가를 통솔하는 사람이라면 사람들을 어디로 데려가고 있는지 생각해야 한다. 또한 우리가 누구를 따라가는 사람이라면 왜 그를 따라가고 있는지 생각해야 한다. 안량한 연봉의 노예로, 성공과 명예의 사로 잡혀 욕망의 바다에서 헛그물질 하도록 사람들을 이끌고 있지는 않는지, 혹은 이끌려 살아가고 있는지 생각해 보아야 한다. 

사명자는 자기와 함께 하는 자를 어디로 데려가는가, 자기가 추종하는 자를 왜 따라가는 것 인지 항상 생각할 수 있어야 한다.

요한복음 21장

21장의 배경

지리적인 배경은 갈릴리이다. 

이 갈릴리는 1. 의미 상 (갈릴리=고리), 그리고 문맥 상 복음과 사도행전을 연결시켜주는 의미를 갖는다. 2. 갈릴리는 제자들에게 있어서 삶의 터전이었다. 즉, 복음과 사도행전의 연결고리가 바로 우리의 삶의 터전임을 알 수 있다. 예수님께서는 이 갈릴리로 제자들을 부르셨고 만나셨다. 우리는 우리의 삶의 현장, 곧 우리의 이해 관계가 걸린 곳에서 예수님을 만나고 바로 그 곳으로부터 주님의 증인으로 살 수 있어야 한다.


1절

사명자는 자기 삶의 현장이 디베랴 임을 알고 디베랴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쫒는 사람이다.

1. 시공을 초월하시는 예수님

당시 예수님께서 정치범으로 십자가 형을 당하신 사실은 제자들에게 있어 큰 충격이었고 두려움이었다.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문이 닫힌 (끌레오: Key, Locked) 다락방에 홀연히 나타나 오셔서 제자들을 만나셨다. 우리가 믿는 주님은 어떠한 시간, 공간에 예속되지 않으시는 분이시다. 

2. 디베랴의 의미

요한복음에는 갈릴리(=디베랴)가 16번 기록되어 있는데 이 중 3번 디베랴 라는 명칭으로 기록되어졌다. 디베랴라 함은 당시 로마 식민지배 하 왕이었던 헤롯 안피타스가 당시의 로마 황제였던 티베리우스를 기념하기 위해 갈릴리 서쪽에 건설했던 신도시 디베랴에서 기인한 것이다. 요한복음 6장에서 예수님께서 오병이어의 기적을 행하신 후 군중들은 예수님을 왕으로 삼으려 하자 예수님께서는 군중들을 피해 기도하러 가시는 장면이 나오는데 이 때 디베랴라는 명칭이 2번 사용되었다. 디베랴의 의미는 황제의 바다, 욕망의 바다라는 의미이다. 예수님의 능력을 보자 군중들은 철저하게 황제의 논리, 욕망의 논리를 따라 예수님을 따랐고, 예수님을 왕으로 만들려 했다. 또한 이러한 욕망의 바다에서 예수님은 제자들을 만나고자 하셨다. 이것은 바로 우리들이 살아갈 삶의 현장이 어디든지 욕망의 바다임을 일깨워 주시기 위함이었다. 

사명자로 살아가기 위해서는 아무리 눈 앞의 욕망이 크게 보여도 결국은 다 거품이 될 것임을 볼 수 있어야 하고 보이지 않는 것을 보는, 시공을 초월하는 눈을 가져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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