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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음의글들

[KBS 모임] 로마서 3장: 믿음과 칭의

말씀을 믿는 믿음은 행함이 있는 믿음

말씀의 유익성은 그것을 지식적으로 아는데에 있는 것이 아니라 앎으로부터 react하는데에 있다. 왜냐하면 말씀은 행동을 유발하지 않으면 안되는 성격을 내재하고 있기 때문이다. 말씀이 들려지고 이것에 동의가 되고 이것을 믿는다면 그것에 대한 행위를 요구하는 것이 말씀의 성격이다. 따라서 불순종했다는 것은 말씀이 주어졌는데에도 말씀을 믿지 않았음을 의미하며, 또한 이것은 그 말씀을 주신 하나님을 인정하지 않았다는 것을 의미한다. 율법을 받았지만 율법대로 행하지 않았던 유대인은 하나님의 말씀을 믿지 않았던 것이고 이 말씀을 주신 하나님을 인정하지 않았다. 율법을 가졌건 가지지 못했건 하나님을 인정하지 않는 인간의 상태는 동일하였고, 유대인이나 이방인이나 차별 없이 하나님의 진노 아래 놓이게 되었다.

그렇다면 그동안 유대인으로, 하나님의 율법을 받은 민족으로 살아왔다는 것은 어떤 의미가 있는가? 가장 중요하게 유대인은 하나님의 법을 받았고, 그 법이 예수그리스도의 오심에 대한 터전을 마련해주었다는 의미를 가진다. 유대인들은 선지자들의 계시를 통해 양심으로만은 알 수 없었던 예수 그리스도의 오심을 예비하며 준비할 수 있었고, 이와 같은 방식으로 구원의 준비단계에서 쓰임을 받았다. 그러나 율법을 받았다는 그 자체가 유대인들 더 위대하게 만들거나 특별하게 만들지 않고 그들로 하여금 의에 이르게 하지 못한다.

하나님의 미쁘심

하나님은 당신의 scheme을 바꾸실 수 없으시며 항상 객관성을 유지하시는데, 이는 바로 그분이 진리이시기 때문이다. 따라서 하나님은 처음 창조하실때부터 심판하실때까지 불변하며, 끊임 없이 그리고 지속적으로 오래 기다시림으로 당신의 계획을 추진해나가신다. 틀어지는 사람으로 인해서 하나님의 계획이 달라질 수 없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의가 드러나는 것은 사람이 그것을 드러나게끔 해서 드러나는 것이 아니며, 드러나지 않게 한다고 해서 드러나지 않는 것이 아니다. 사람인 우리가 불순종함으로 하나님의 의가 표출되고 말고를 돕거나 막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이는 마치 도둑이 경찰을 먹여살리기 위해 도둑질을 더 하겠다는 논리와 같다. 하나님은 미쁘시기 때문에. 그 미쁘심에 근거하여 앞으로 심판하실 것이다

의인은 없다

유대인이나 이방인임을 막론하고 하나님을 진정으로 찾는 사람이 없다. 그리스도를 받아들여 믿는다 하면서 자기 스스로를 의롭다 여기고, 그렇기 때문에 다른 사람들을 가르쳐야 한다는 자기 의에 빠져 사는 사람들이 굉장히 많다. 유대인들이 바로 그러했는데 예수님께서는 자기 의에 빠져사는 이런 부류의 사람들에 대해 가장 노여워하였다. 예수님께서는 이것을 깨뜨시리고 새로운 의를 주셨다. 예수님께서 이러한 새로운 의를 주셨음에도 유대인들과 똑같이 자기 의에 빠져 사는 우리들의 모습이 사도바울을 화나게 하였다. 하나님께서 주신 율법은 하나님의 기준이지만 인간이 의롭게 살았다는 것은 인간의 기준이다. 율법을 받았거나 받지 않았거나 하나님을 찾는 사람은 아무도 없고 다 죄에 빠져 자기가 원하는대로 사는 것이 인간의 모습이었다. 율법을 안다고 결코 자기 의에 빠져 자랑할 수 없는 것이다.

한 의가 나타나다

인간이 모두 타락하여 어둠가운데 있는 상태에 빛을 비춰주신 것이 율법이다. 그리고 그것을 통해 인류를 구원하고자 하셨던 것이 하나님의 미쁘심이다. 그 방법과 그 빛을 근거로 해서 하나님의 또 다른 의가 나타났다(별개의 의가 나타난게 아니라 하나님의 의의 새로운 차원이 나타났다는 것을 의미함). 율법이 있었던 없었던 관계없이 차별이 없이 믿음으로 그리스도를 받아들이는 자들에게 주시는 의를 말한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구속(죄값을 대신 치뤄주심)이 은혜로 말미암아(우리가 의롭게 행동해서 자격이 있는 것이 아니라 그 받을 댓가를 아무것도 지불하지 않은 상태에서 받는 것) 값 없이 의롭다 하심을 얻었었다. 우리가 의로워지는 것이 아니라, 믿을 때 하나님께서 의롭다라고 칭해주시는 것이다. 구속으로 죄사함을 받았다는 것은 죄가 그냥 사라졌다는 것이 아니라, 누군가가 그 엄청난 죄의 값을 대신 지불하셨다는 것을 의미한다. 믿는다는 행위가 나를 의롭게 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그저 의롭다라고 불러주시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는대로 진리가 되었다.

죄의 용서받음을 쉽게 생각해서는 안된다. 창조나 빅뱅보다, 누군가 우리의 죄 값을 대신 치룬 사건이훨씬 더 크고 위대한 사건이다. 그의 피라는 엄청난 속죄의 댓가를 통해 인간의 죄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엄청난 진노를 cancel하셨다. 인간이 아무리 큰 죄를 지어도 하나님의 대속을 벗어날 수 없다. 하나님 앞에서 의롭다 생각하고 하나님께로 나아가는 것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 무슨 짓을 다해도 역시 하나님 보시기에는 냄새나는 썩은 사람이다. 반면 엄청난 죄를 지었다 할지라도 십자가의 사건 앞에서는 아무것도 아니다. 이런 큰 죄가 과연 용서 받을 수 있을지 하나님의 대속의 능력을 부인하는 것은 하나님에 대한 모독이다.

믿음의 법

그리스도를 믿은 자들은 이제는 율법의 법이 아닌 믿음의 법 아래 있다. 믿음의 법은 인간의 관점으로 볼때는 너무 이해가 되지 않고 stupid하게 보이는 방법일 수 있지만 이것이 The Way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