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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음의글들

[John Piper 존 파이퍼] 하나님을 경외한다는 것의 의미

Fear of God

I would say this is a very important topic. It's not marginal. It is all over the Bible. The fear of the Lord is a pervasive and important topic, and I think it is needed today because we are so quick to solve the problem of God's fearsomeness with the gospel that we may not give people a chance to really let it sink in how deeply sinful they are or how fearful God really is. 

이것은 결코 사소하지 않은, 굉장히 중요한 주제입니다. 성경 모든 곳에 이 주제가 있기 때문이지요. 하나님을 경외함이란 만연하고 중요한 주제인데, 특히 오늘날 우리가 하나님의 무시무시함이라는 문제를 복음으로 너무나 쉽게 풀어내 버리기 때문에 사람들로 하여금 그들이 얼마나 깊이 죄인된 자들이며 하나님이 실제로 얼마나 무서우신 분이신지 깊이 생각하고 느낄 기회를 주지 않기 때문에 더욱 중요합니다. 

The Old Testament, of course, everybody would think of the Old Testament I suppose as strewn with commands to fear the Lord and warnings of the terrible things to come if we don't, and the blessings that come if we do. Proverbs 28:14, "Blessed is the one who fears the Lord; who does not harden his heart" So fearing God is contrasted with a hard unperceptive heart. Isaiah 66:2, "This is the one to whom I will look he who is humble and contrite in spirit and trembles at my word" So again, fearing is corresponding with humility and lowliness and sensitivity of heart. 

대게 모든 사람들은 구약성경이 하나님을 경외하라는 명령들과 우리가 그렇게 하지 않을 때 닥칠 끔칠한 일들에 대한 경고, 그리고 우리가 그렇게 할 때에 받게 될 축복들로 가득하다는 것을 알고 있을 것입니다. 잠언 28장 14절에서 "항상 경외하는 자는 복되거니와 마음을 완악하게 하는 자는 재앙에 빠지리라"라고 말하고 있는데 이 것으로부터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이란 완악하고 하나님을 수용하지 못하는 마음과 반대되는 것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사야 66장 2절에서는 "무릇 마음이 가난하고 심령에 통회하며 내 말을 듣고 떠는 자 그 사람은 내가 돌보려니와"라고 말하고 있듯 경외함이라는 것은 겸손과 낮은 마음, 그리고 우리 마음의 민감함과 관련된 것이라는 것을 알수 있지요. 

The sheer majesty of God as well as the holiness and justice and power and wrath of God cannot be approached in a cavalier spirit. It would be insane to think that we can just stroll up to the creator of the universe, and have a cavalier spirit. We are blind if we think we can do that without trembling. 

하나님의 순전한 위엄과 거룩함, 정의, 힘과 진노는 우리가 그저 무신경한 정신으로는 결코 다가 갈 수 있는 대상이 아닙니다. 우리가 무신경한 정신으로 만물의 창조주께 그저 걸어 나갈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정신 나간 생각일 것입니다. 우리가 두려운 마음 없이 그렇게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 우리는 똑바로 보고 있지 못한 것입니다.

Now, is that just for the Old Testament? What does the New Testament say? Philippians 2, "work out your salvation with fear and trembling for God is the one who's at work in you" This is really interesting. You should fear and tremble, because God is working to keep you. And I think it means the sheer, awesome presence of God in our lives working for us, not against us, for us should produce trembling. That's amazing. So the New Testament treats the fear of God as a motive for not turning away from Him. We should fear in the sense we seek refuge from God away from God's terrible wrath. God's grace in Christ is the refuge from God's wrath outside Christ. There's terror outside Christ, and there's a different kind of trembling inside of Christ, so for example, Hebrews 12:25 "See that you do not refuse him who is speaking. For if they did not escape when they refused him who warned them on earth, much less will we escape if we reject him who warns from heaven... Therefore let us be grateful for receiving a kingdom that cannot be shaken, and thus let us offer to God acceptable worship, with reverence and awe for our God is a consuming fire" In other words, the same thing is there that we are safe, we have a kingdom that cannot be shaken, but our God is a consuming fire. You don't come near Him without reverence and awe. 

그렇다면 이것은 단지 구약의 메세지일 뿐일까요? 신약은 어떻게 말하고 있을까요? 빌립보서 2장에서는 "두렵고 떨림으로 너희 구원을 이루라 너희 안에서 행하시는 이는 하나님이시니"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 말씀은 매우 흥미롭지 않을 수 없습니다. 바로 하나님께서 우리를 보호하시기 위해 일하고 계시기 때문에 우리가 하나님을 경외하고 두려워해야 한다고 말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저는 이 말씀이 순전하고도 경이로운 하나님의 임재가 우리의 삶 속에서, 바로 우리를 위해 일하고 계시기 때문에, 다시 한 번 말하지만 우리를 대적하고 계시기 때문이 아니라 우리를 위해서 일하시고 계시기 때문에 우리가 하나님을 두려워 해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고 봅니다. 이것은 놀라운 사실이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신약성경은 하나님의 경외를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으로부터 돌아서지 않게 할 원동력으로 보고 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끔찍한 진노로부터 피하기 위해 하나님께로 피난처를 구한다는 맥락에서 하나님을 경외해야 한다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스도 밖에는 공포가 있지만, 그리스도 안에는 또 다른 종류의 두려움이 있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히브리스 12장 25절부터는 "너희는 삼가 말씀하신 이를 거역하지 말라 땅에서 경고하신 이를 거역한 그들이 피하지 못하였거든 하물며 하늘로부터 경고하신 이를 배반하는 우리일까보냐... 그러므로 우리가 흔들리지 않는 나라를 받았은즉 은혜를 받자 이로 말미암아 경건함과 두려움으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섬길지니 우리 하나님은 소멸하는 불이심이라"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 말은 즉, 우리는 안전하고 어떤 것에도 흔들리지 않는 나라를 받았지만, 동시에 우리의 하나님은 소멸하시는 불이시라는 말입니다. 우리가 경외함이 없이 결코 그 분 앞에 가까이 나아올 수 없다는 말이지요.

Romans 11:19-21 shows how not only do you experience the fear of God as a right way of worshiping Him in reverence and awe, but you experience the fear of God as an incentive not to run away from Him. So it says in Romans 11:19-21, Then you will say, “Branches were broken off so that I might be grafted in.That is true. They were broken off because of their unbelief, but you stand fast through faith. So do not become proud, but fear" So he's commanding the believers who are standing fast in faith to fear, to fear what? Fear the prospect of becoming proud and arrogant and self-sufficient and drifting away from the living God in a guide of a hard-heartedness. So fear functions as a preservative. We don't want to run away from God. Don't be presumptuous. So there's that aspect of fearing God. We want to be rid of some aspects of fearing God, and we don't want to be rid of some aspects of fearing God. So, 1 John describes the kind we want to be done with. 1 John 4:18,  "There is no fear in love, but perfect love casts out fear. For fear has to do with punishment, and whoever fears has not been perfected in love." So, God doesn't want us to cower like slaves in the household where the children should be enjoying the sweet peace in their father's care. So, perfect love, if we can get to the point of perfect love, we wouldn't fear God's rejection of us. We would be really content in his acceptance. So, we can be done, we should be done with the cowering fear that we might not be saved, and enjoy our care and security in His house. But the other aspect of fear is what we should keep and enjoy. Yes, enjoy. 

로마서 11장 19절에서 21절에서는 하나님을 경외함이라는 것을 우리가 존경과 두려움 가운데 하나님을 바르게 예배하는 어떠한 방식으로만 경험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하나님으로부터 멀리 떠나가지 않기 위한 원동력으로서도 어떻게 경험하게 되는지 보여주고 있습니다. 로마서 11장 19절에서 21절에서 "그러면 네 말이 가지들이 꺾인 것은 나로 접붙임을 받게 하려 함이라 하리니 옳도다 그들은 믿지 아니하므로 꺾이고 너는 믿으므로 섰느니라 높은 마음을 품지 말고 도리어 두려워하라"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바울은 믿음으로 굳게 선 신자들에게 "두려워하라"라며 명령하고 있습니다. 무엇을 두려워하라는 말인가요? 바로 그들이 냉담함에 이끌려 스스로를 자랑스러워하고 교만하며 자족함게 빠지거나 살아계신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지게 될 가망을 두려워하라는 것입니다. 즉, 경외함은 방부제와 같은 역할을 하는 것이지요. 우리는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지는 것을 원하지 않습니다. 주제 넘게 교만하게 행하지 마십시오. 그러니 하나님을 경외한다는 것에는 이러한 또 다른 측면이 존재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것의 어떠한 측면들은 없애야 함과 동시에 이러한 또 다른 두려움의 측면들은 지니고 있어야 합니다. 요한일서는 우리에게 없어져야 할 두려움에 대해서 말하고 있습니다. 요한일서 4장 18절은, "사랑 안에 두려움이 없고 온전한 사랑이 두려움을 내쫓나니 두려움에는 형벌이 있음이라 두려워하는 자는 사랑 안에서 온전히 이루지 못하였느니라"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 말은 하나님께서 아이들이 그 아버지의 보호 속에서 달콤한 평안을 마땅히 누려야 할 집 안에서 종들처럼 두려워하며 지내기를 원치 않으신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완전한 사랑은, 우리가 완전한 사랑의 수준까지 다다를 수 있다면, 하나님께서 우리를 거부하시리라는 두려움 속에 살지 않을 수 있게 합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우리를 받아 주신다는 것에 참 만족을 누리는 상태에 거하게 될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우리가 구원 받지 못할 것이라는 두려움으로 벌벌 떠는 것을 끝낼 수 있을 뿐더라 이런 두려움을 끝내야 하며 하나님의 집에서 하나님의 보호하심과 안전함 속에 즐거워 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러나 두려움의 다른 측면은 우리가 계속 지니고 있어야 하며 이 또한 즐거워 해야 하는 것입니다. 네, 즐거워 해야 한단 말입니다. 

Nehemiah 1:11, "O Lord, let your ear be attentive to the prayer of your servant, and to the prayer of your servants who delight to fear your name" Delight to fear your name, delight to fear your name. So, there is a kind of fear that is not repulsive. It doesn't drive us away, but it draws us in. 

느헤미야 1장 11절에서는 "주여 구하오니 귀를 기울이사 종의 기도와 주의 이름을 경외하기를 기뻐하는 종들의 기도를 들으시고 오늘 종이 형통하여 이 사람들 앞에서 은혜를 입게 하옵소서"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이름을 경외하기를 기뻐하는 자라는 말에 집중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밀어내지 말아야 할 류의 두려움이 있다는 말입니다. 이러한 두려움은 우리를 하나님으로부터 멀리하게 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를 하나님께로 더욱 가까이 하게 하는 것입니다. 

Here's Isaiah 11:2 about the Lord Jesus. "And the Spirit of the Lord shall rest upon him, the Spirit of wisdom and understanding, the Spirit of counsel and might, the Spirit of knowledge and the fear of the Lord. And his delight shall be in the fear of the Lord" Jesus enjoyed fearing God. 

이사야 11장 2절에서는 예수님에 대하여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그의 위에 여호와의 영 곧 지혜와 총명의 영이요 모략과 재능의 영이요 지식과 여호와를 경외하는 영이 강림하시리니" 예수님은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을 즐거워하셨습니다. 

Now, here are two pictures in our clothes. I went to visit a man named Dick Tigan with Carlston when he was six. He had a dog at the door when we opened the door, and he looked at Carlston eyeball to eyeballs-the giant dog. And I sent Carlston back to the car to grab something that we had forgotten, and the dog went loping up behind this six year old at his very height with a little low growl. And Carlston was terrified. And Dick leaned out the door and shouted to Carlston my six year old "Carlston maybe better not run. He doesn't like it when people run away from him" And I thought that's going into sermon this Sunday. "Just walk beside him. You only need to put your hand around his neck" You know, God is horrifically dangerous to run away from, and we should be terrified to run away from God. But if we stay with Him, his growl is a growl of our protection not our destruction. We can put our arm around his big Aslan-like neck. 

여기 두 가지 상황을 한번 그려보십시오. 예전에 제 아들 칼스턴이 6살일때 딕 티건이라는 분의 집을 함께 방문했었습니다. 티건 씨가 집 문을 열었을 때 그 문 가에는 엄청나게 큰 개가 한 마리 있었는데, 눈을 부랴리면서 칼스턴을 쳐다보았습니다. 잠시 후, 제가 차에 놔두고 온 것이 있어 칼스턴을 시켜 가져오게 하였는데 이 개가 제 여섯살 난 아이 뒤에서 그 키만큼 뛰어올라 으르렁 대기 시작했습니다. 칼스턴은 당연히 겁에 질렸지요. 그러자 딕 씨는 분 밖으로 고개를 내밀어 칼스턴에게 외치셨습니다. "칼스턴, 도망가려고 하지마렴. 그 개는 사람들이 자기로부터 도망가려 하는 걸 되게 싫어한단다" 그리고 전 그 순간 이 이야기가 이번주 설교에 예화로 쓰여져야겠다 생각했지요. 그리고서 딕 씨는 "그냥 그 개 옆으로 걸어가렴. 그냥 그 개 목 주위를 손으로 한 번 쓰다 듬어 주렴" 이라고 말하셨습니다. 아시다시피 하나님께로부터 도망치기에는 하나님께서 너무나 공포스럽게도 위험하신 분이시며, 우리는 하나님으로부터 도망치는 것에 대해서 우리는 매우 두렵게 생각해야 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그와 함께 거한다면 하나님께서 으르렁 대시는 것은 우리를 보호하시기 위한 것이지 결코 우리를 멸하시기 위한 것이 아니게 됩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아슬란'과 같은 목을 우리의 팔로 감싸 안을 수 있다는 말입니다. 

Here's another image. I love the picture of big, holy, sovereign, majestic God. I'm picturing myself climbing up the mountain. Say, the Himalayas. And this massive rock faces. I see a storm coming. It's gonna be a massive storm, and I feel unbelievably vulnerable, and I'm desperately looking for a little covert in the rock where I won't be blown off the side of the cliff to destruction. And I find a hole in the side of the mountain and I slip in quickly and suddenly the holiness and justice and power and wrath and judgment of God breaks over me like a hurricane, but I know I am totally safe. Which means, all that horrible danger is transposed into the music of majesty. And I can enjoy it rather than fearing in it. And I think that's what the cross is. Jesus died for us to provide a place where we could enjoy the majesty of God with a kind of fear and trembling and reverence and awe, but not a cowering fear.

여기에 또 다른 상황이 있습니다. 저는 하나님의 크시고 거룩하시며 주권적이시고 장엄하신 장면을 좋아합니다. 제가 산을 오르고 있다고 생각해보겠습니다. 히말라야를 오르고 있다고 하지요. 제가 거대한 돌들과 눈보라가 밀어 닥치고 있는 것을 보게 되었습니다. 엄청난 눈보라 일 것임이 분명하고, 저는 믿을 수 없을 만큼 아무 것도 할 수 없을 것 같이 느껴집니다. 그리고 저는 제가 절벽으로 휩쓸려가 죽지 않게 피할 수 있을 은신처를 절박하게 찾아 나섭니다. 그 때 제가 한 가운데에 한 동굴을 발견하고 재빨리 피해 들어갑니다. 그리고 순식간에 하나님의 거룩하심과 공의로우심, 그리고 힘과 진노와 심판이 허리케인과 같이 불어닥칩니다. 그렇지만 그 순간에 저는 제가 완전하게 안전하다는 것을 압니다. 그 모든 두려운 위험이 제게 마치 장엄한 음악과 같이 바뀌어져 들려오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저는 이것을 두려워 하기 보다 즐거워 할 수 있습니다. 저는 이것이 바로 십자가라고 생각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가 벌벌 떠는 두려움이 아니라 하나님의 장엄하심을 다른 종류의 두려움과 경외함과 존경함으로 즐거워 할 수 있는 장소를 우리에게 주시기 위해서 죽으신 것입니다. 

인터뷰 발췌 from <http://www.desiringgod.org/interviews/what-does-it-mean-for-the-christian-to-fear-god>

영한번역 by 댄인서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