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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음의글들

[사명자반] 복음에서 사명자로의 연결고리 - 요 21:15-17

15-17절

사명자는 모든 방향으로 사랑의 통로가 되어야 한다

1. 세 번의 동일한 질문

예수님께서 당신을 세 번 부인한 베드로에게 세 번 공개적으로 주님을 사랑한다고 고백할 기회를 주심으로 그의 배신을 공개적으로 만회할 기회를 주셨다. 이러한 공개적 고백을 통해 베드로의 내적 상처가 치유될 수 있었고, 죄책감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었을 것이다. 사랑은 언제나 또 다시 기회를 주는 것이다.

예수님께서는 또한 베드로의 수준에 당신을 맞추어주셨다. 예수님께서 처음 던지신 질문의 동사는 '아가파오'로 아가페의 사랑, 무조건적인 사랑을 의미하는데 이에 대한 베드로의 대답은 '휠레오' 곧 필리아의 사랑, 형제애의 사랑이었다. 두 번째 예수님께서 재차 아가페의 사랑으로 당신을 사랑하느냐 물으셨을때 베드로는 또 다시 필리아의 사랑으로 대답했다. 베드로가 아가페 자체를 전혀 이해하고 있지 못함을 보신 예수님께서는 세 번째에는 필리아의 사랑으로 당신을 사랑하느냐고 고쳐 물으셨고 베드로는 이번에도 필리아의 사랑으로 사랑하노라 고백했다. 예수님께서 필리아의 사랑까지만 알고 있던 베드로의 수준에 당신을 맞추어 그의 고백을 받아 주신 것이다. 사랑은 상대에게 요구할 수 있는 것을 요구하는 것이다. 

2. 세 종류의 양

예수님께서 첫번째로 언급하신 양은 헬라어로 '아르니온' 즉 어린양, 새끼양을 의미한다. '아르니온'을 사랑하라고 하시는 것은 자기보다 못한 사람을 사랑하라는 것이다. 우리는 쉽게 자기보다 못한 사람에 대한 우월감을 가지고 자기 과시의 마음을 갖게 되는데 이것은 사랑이라 할 수 없다. 두번째로 언급하신 양은 '프로바티온'으로 중간 양, 즉 자기와 같은 수준의 사람을 의미한다. 우리는 비슷한 사람을 대할 때 라이벌의식을 느끼거나 경쟁상대로 여기고 진정으로 사랑하지 못할 때가 많다. 세번째로 언급하신 양은 '프로바톤'으로 자기보다 더 크고 나은 사람을 의미한다. 우리는 이러한 사람들 앞에서 비굴해지고 그들을 이용하여 우리의 이기적인 목적을 달성하고 싶어 한다. 때로는 이들의 잘 됨을 배아파하고 헐뜯기도 한다. 

예수님께서는 이 세 종류의 양 모두를 사랑하라고 말씀하셨다. 자기보다 못한 사람을 위해 아래로, 자기와 비슷한 사람을 위해 옆으로, 자기보다 더 큰 사람을 위해 위로, 즉 모든 방향으로 주님의 사랑을 흘려 보내는 것이 참된 사명자의 삶인 것이다. 주님께서 우리에게 이러한 사랑을 보이셨듯, 주님을 따르는 제자로서 이러한 사랑의 삶을 사는 것이 지당한 것이지 않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