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복음 썸네일형 리스트형 요한복음 1:6-13 E : 참 빛이 있었다고 과거형으로 표현이 되었는데 그 빛이 비취어지고 있는 것은 현재 진행형으로 표현되어 있는 것이 놀라웠다. 나에게 처음으로 하나님의 빛이 비추어졌고 나의 어두움이 드러나게 되었을 때가 기억난다. 어둠과 빛은 절대로 공존할 수 없음을 다시 한 번 느낀다. 복음을 깨닫고 구원을 받은 사람은 어둠 가운데 거할 수 없다는 것이 위로가 된다. 이제 나도 내 안에 임한 이 빛을 이웃에게 비추는 삶을 살고 싶다. 때때로 어두움 속에 숨고 싶음을 느낄 때가 있다. 그 때 마다 나는 빛에 거하며 어두움에 거할 수 없다는 진리를 기억해야겠다. 공동체를 섬기면서 내가 드러나고 싶은 마음이 있는데 요한을 증거하는 자로 부르셨듯 나도 그렇게 예수님만 증거하는 삶을 살고 싶다. D : 12절에서 영접하는 자.. 더보기 요한복음 1:1-5 1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라. 창세기 1장 1절 말씀이 떠오르는 말씀이다. 성부 아버지께서 천지를 창조하시기 전부터 말씀이신 예수께서는 그와 함께 계셨고, 아버지께서 천지를 창조하시는 그 순간에도 함께 하셨다. 예수의 하나님 되심, 즉 신성을 볼 수 있으며 동시에 예수께서 하나님과 함께 하심으로 관계 안에서 교제하신다는 것이 나타나있다. 2 그가 태초에 하나님과 함께 계셨고 본질은 같으시지만 함께 계시며 교제하시는 관계 가운데 계신 하나님. 죄가 이 땅에 들어왔을때 죄로 인해 무너진 인간 안의 하나님의 형상 또한 관계성이었다. 하나님과 인간의 관계가 무너졌으며 인간과 인간의 관계가 무너졌던 것을 볼 수 있다. 3 만물이 그로 말미암아 지은 바 되.. 더보기 [사명자반] 복음에서 사명자로의 연결고리 - 요 21:18-19 18-19절 사명자는 주님을 향해 두 팔을 벌리고 살아야 한다두 팔을 벌리다상대를 향해 두 팔을 벌리는 것은 항복하는 것, 즉 더 이상 저항하지 않겠다는 것을 의미한다. 믿음은 하나님을 향해 두 팔을 벌리고 항복함으로 자신의 뜻이 무엇이든 상관없이 오직 하나님의 뜻을 전적으로 따르는 것이다. 따라서 믿음의 삶을 사는 사람은 어떤 경우에도 주님을 자신이 이끌고 가려 해서는 안된다. 믿음은 나보다 나를 더 잘 아시고 나를 만드시고 구원하신 오직 한 분께 이끌려 가는 것, 온전히 그 분에 의해 다루어지는 것이다. 베드로는 예수님을 저버리고 과거형으로 망각한 채 욕망의 헛그물질로 밤을 지새우고 있었다. 스스로 인생의 띠를 띠고 자신의 욕망을 좇아 살고 있었던 것이다. 이러한 베드로가 주님 앞에서 두 팔을 벌리고.. 더보기 [사명자반] 복음에서 사명자로의 연결고리 - 요 21:15-17 15-17절사명자는 모든 방향으로 사랑의 통로가 되어야 한다1. 세 번의 동일한 질문예수님께서 당신을 세 번 부인한 베드로에게 세 번 공개적으로 주님을 사랑한다고 고백할 기회를 주심으로 그의 배신을 공개적으로 만회할 기회를 주셨다. 이러한 공개적 고백을 통해 베드로의 내적 상처가 치유될 수 있었고, 죄책감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었을 것이다. 사랑은 언제나 또 다시 기회를 주는 것이다.예수님께서는 또한 베드로의 수준에 당신을 맞추어주셨다. 예수님께서 처음 던지신 질문의 동사는 '아가파오'로 아가페의 사랑, 무조건적인 사랑을 의미하는데 이에 대한 베드로의 대답은 '휠레오' 곧 필리아의 사랑, 형제애의 사랑이었다. 두 번째 예수님께서 재차 아가페의 사랑으로 당신을 사랑하느냐 물으셨을때 베드로는 또 다시 필리아의.. 더보기 [사명자반] 복음에서 사명자로의 연결고리 - 요 21:15 15절 사명자는 자신이 지금 무엇을 사랑하고 있는지를 분명히 해야 한다 1. 시몬을 부르시다 예수님께서 시몬에게 '게바' (베드로=반석)라는 새 이름을 주셨던 것은 시몬의 옛 삶을 벗고 예수님 안에서 반석과 같은 믿음을 가지고 새롭게 살라는 의미였다. 예수님이 베드로를 '시몬'이라고 부르셨던 것은 예수님께서 보시기에 예수님을 잊은 채 밤새 욕망의 헛그물질을 하고 있던 그가 반석 같은 믿음으로 주님을 사랑하기보다 시몬의 옛 삶으로 회귀해 있었기 때문이다. 예수님께선 그로 하여금 반석과 같은 믿음에서 동떨어져 있는 그의 실상을 자각케 해주시기 위함이었다. 2. 나를 더 사랑하느냐 예수님께서는 베드로에게 비교급 표현을 사용하셔서 '이 사람들보다 더 사랑하느냐'고 물으셨다. 이것은 그 자리에 함께 있던 자들과 .. 더보기 [사명자반] 복음에서 사명자로의 연결고리 - 요 21:14 14절사명자는 그 믿음의 토대가 부활 신앙인 사람이다1.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심요한복음에서는 '부활'이라는 단어 대신에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심'이라고 복잡하게 표현하고 있다. 요한복음 11장에서 '나는 부활(아나스타시스)이요 생명이라'는 구절 외에는 제자들이 예수님의 다시 사심을 '부활'이라는 단어로 기록한 적이 한 번도 없었다. 이는 그 당시 헬라인의 언어 사용 관습으로 인함이었는데 '부활'이라는 단어는 ①부활은 없다라는 부정적인 문맥에서 혹은 ②현실과 동떨어진 전설, 신화를 이야기 하는 문맥에서만 사용되어졌다. 따라서 '부활'이라는 단어를 사용하게 되면 그 참 의미를 전달할 수 없었을 것이다. 대신에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심'이라 표현하였는데 이는 더 정확하게 예수님께서 시신들 가운데서 .. 더보기 [사명자반] 복음에서 사명자로의 연결고리 - 요 21:13 13절사명자는 물질 이전에 마음을 주는 사람이다1. 예수님의 마음와서 조반을 먹으라는 예수님의 부르심에 제자들은 감히 음식을 먹지 못하고 있었다. 그러자 예수님께서 가셔서 일일히 빵과 생선을 나누어 주셨고, 그제서야 제자들은 음식을 먹었다. 빵과 생선 전에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먼저 마음을 주셨던 것이다. 제자들이 먹었던 것은 그저 빵과 생선이 아니라 바로 제자들을 사랑하시는 예수님의 마음이었다. 2. 삶을 변화시키는 능력비록 보잘 것 없는 식사였지만 그 조반은 곧 예수님의 사랑의 마음이었고, 이 사랑에는 제자들의 삶을 변화시키는 능력이 있었다. 제자들을 통해서 예수 그리스도가 역사하기 시작하였던 것이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그러셨듯, 우리는 우리의 인생을 누군가를 위해 마음과 사랑으로 내어줄 수 있.. 더보기 [사명자반] 복음에서 사명자로의 연결고리 - 요 21:12 12절사명자는 모든 질문의 답이 주님께 있다는 것을 아는 사람이다1. 제자들의 침묵제자들이 예수님을 알아보고 나서는 아무도 예수님께 질문을 하지 않았다. 3년 간 예수님을 따르다 예수님이 돌아가신 뒤에 아무 것도 남은 것이 없는 상태로 다시 디베랴에서 그물질을 할 때 왜 회의감이 들지 않았겠는가? 제자들이 예수님 앞에 섰을 때에 감히 아무도 질문을 하지 않았다. '서다'라는 단어는 '에이도'(=보다)라고 번역되며, '감히'는 '톨마오'(구태어)로 번역된다. 제자들이 예수님을 보았기에 구태어 질문할 필요가 없어 졌던 것이다. 2. 예수님께로 시선을 맞춤우리가 주님을 보지 않을 때는 질문들에 사로 잡혀 아무 것도 할 수 없다. 주님을 보느냐 세상을 보느냐에 따라 답을 얻을 수도, 질문에 치일 수도 있다. C.. 더보기 [사명자반] 복음에서 사명자로의 연결고리 - 요 21:10-11 10-11절사명자는 하나님께 받은 은혜를 헤아려 보는 사람이다1. 물고기를 세다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잡은 생선을 가져오라('페로' 공개하다, 드러내다)고 말씀하시고 그 물고기를 한 번 세어보라고 말씀하셨다. 제자들이 물고기를 세어보니 물고기는 153마리였다. 이 물고기를 세는 장면을 생각해 볼 때, 제자들은 평생에 이러한 일이 없었기 때문에 물고기가 그렇게까지 많았으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했을 것이다. 물고기를 잡은 사건은 어쩌면 일순간의 감격으로 끝날 수 있었던 사건이었지만, 예수님은 그 물고기들을 한마리 한마리씩 세어보라고 말씀하셨다. 한마리씩 센다는 것은 예수님의 은혜를 헤어려 보는 것이다. 2. 출애굽의 기록민수기 33:1은 모세가 여호와의 명령대로 그 동안의 출애굽 노정을 기록하고 있는데 이 것은.. 더보기 [사명자반] 복음에서 사명자로의 연결고리 - 요 21:8-9 8-9절사명자는 자신이 당할 수 있는 배신감을 압도하는 사명감을 가지고 살아가는 사람이다1. 예수님의 조반예수님께서는 하찮은 빈민에 불과했던 제자들을 그들이 어떤 자격이 있어서가 아니라 일방적인 은혜, 부르심으로 부르셨고 지구상 누구도 누릴 수 없는 은혜를 일방적으로 누리게 하셨다. 그러나 가롯유다, 베드로 등 제자들은 예수님을 부인하고 모두 배반하여 떠나갔다. 우리가 예수님이라면 그들과 또 관계를 맺겠는가? 또한 예수님께서 제자들과 만나기로 하고 디베랴에 가 계셨는데, 욕망의 바다에서 계속 헛 그물질 하느라 제자들은 예수님을 잊고 알아보지도 못했다. 하지만 예수님은 당신을 잊고 있던 그들을 위해 조반을 만들고 계셨다. 예수님께서는 한심한 제자들을 보고 배신감에 압도 당하지 않으셨고, 오히려 그들의 연약.. 더보기 이전 1 2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