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절
사명자의 삶은 우리에게 예의를 다해주신 하나님께 예의를 다하는 삶이다
1. 겉 옷을 두르다
예수님께서 당신을 제자들에게 나타내시자 성질이 급했던 베드로는 평소와 같이 바라도 뛰어내렸다. 그러나 눈에 띠는 것은 베드로가 물고기를 잡을 당시 벗어놓았던 겉옷을 챙겨 입고 물에 뛰어 들었다는 것이다. 평소의 성미 급한 베드로라면 옷을 벗은 채로 바로 물에 뛰어 들었을 것인데 말이다. 요 13:4에서 예수님께서는 겉 옷을 벗으시고 제자들의 발을 씻기셨다. 제자들의 발을 일일히 다 씻기시고 오히려 지치시고 더우셨을 때에 예수님께서는 다시 겉 옷을 입으셨다, 제자들 앞에서 말씀하시기 전 의관을 정제하시고 예의를 갖추신 후에 말씀하셨던 것이었다. 이와 같이 베드로의 겉 옷 입음 이라는 행위는 예수님께 예의를 갖추는 것이었다.
2. 하나님의 예의, 우리의 예의
하나님께서 우리와 같은 비루한 존재를 살리시기 위해 독생자를 재물로 주신 것과 같은 예의가 있었을까. 이렇듯 우리에게 예의를 다해주신 하니님께 예의를 다하는 삶이 바로 사명자의 삶이다. 우리가 하나님 앞에 갖출 수 있는 최고의 예배이다. 즉, 하나님께 예의를 다함이란 하나님께 갖출 수 있는 가장 큰 예의, 예배의 사람이 되는 것이다. 예배의 원어 '샤하'라는 말은 굴복하다, 완전히 엎드리다, 노예가 주인의 발에 바짝 엎드려 입맞추다 라는 의미를 갖는다. 이러하듯 예배는 나는 없어지고 아버지만 보이는 것, 나의 주인 되신 하나님께서 내게 군림하시도록, 나를 지배하시도록 하는 것이다.
레위기 1:1-9는 구약의 예배를 설명하고 있는데 먼저 안수를 통한 죄의 전가(이 재물을 받으시고 죽어야 할 우리를 받으소서)가 있어야 하며 재물을 가져간 자가 스스로 재물을 잡아야 하며(나의 목을 침) 스스로 고기의 각을 떠야하고(우리를 재물로 각 뜸) 내장과 정강이는 물로 씻어야 한다(모든 더러움을 씻어냄). 이러하듯 예배는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죽는 시간이다.
예배가 하나님 앞에서 최고의 예의를 갖추는 것이라면 우리는 예배를 어떠한 자세로 드리는가? 예배가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죽는 시간이라면 우리의 편의에 의해서 예배를 드릴 수 있겠는가?
더불어, 예의를 다함이란 사람에 대해서 예의의 사람이 됨을 의미한다. 그리스도인이 백마디의 성경구절을 전하더라도 예의 범절을 다하지 않는다면 그것이 전도라고 할 수 없다. 세상을 선교지로 살아가는 그리스도인이 세상 사람들에게 과연 무례할 수 있을까? 우리가 예의를 다할 때 그리스도의 생명이 흘러 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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