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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생각들

슬픔에 대하여

루이스는 '고통의 문제'에서 인간의 고통을 영적인 것, 곧 근본적인 인간의 죄로 말미암은 것으로 보고, 우리가 그 고통을 통해 하나님께로 돌아가게 된다면 이것은 축복이라고 말했다. 나 또한 하나님께서 내 삶에 고통을 허락 하실 때 하나님과의 건강하지 못했던 관계를 돌이킴으로 고통을 극복하고 기쁨을 회복했던 경험들이 있다. 하지만 인간의 내부적인 문제로 인한 고통을 제외하고도 하나님과의 친밀함을 누리는 가운데에 있지만, 어떠한 외부적인 변화로 인해 느껴지는 아픔, 슬픔은 어떻게 바라보아야 하는 것인지 잘 모르겠다. 사실 이것을 어떻게 바라보아야 하는 것인가는 문제가 아니라 어떻게 이 슬픔을 극복해야 하는 것인가가 나의 고민이다.  

나는 기쁨을 참 좋아하고 항상 기쁨에 사로잡혀 있기를 원하는 그런 류의 사람인 것 같다. 항상 즐겁고 신나는 마음이 가득하다. 슬픔을 잘 느끼지 못할 뿐더러 슬픔이라는 감정이 밀려올 때 어떻게든 빨리 기쁨으로 이것을 바꾸어 보려고 애쓴다. 그래서 이러한 슬픔이 내게 밀려올 때 상당히 당황스럽고, 주변에 누군가가 슬퍼할 때 어찌 위로를 할지 몰라 쩔쩔 매었던 적이 한 두 번이 아니다. 아마 내가 슬픔에 대해서는 책으로만 배워서 그런가 보다. 요 며칠 책도 읽어보고 노래도 몇 곡 써봤다. 친구들과 운동장을 죽어라 뛰기도 해봤는데 이 슬픔의 감정은 쉽게 잘 사라지지 않는다.

생각해보면 나는 사춘기를 겪지도 않았다. 아니, 겪을 겨를이 없었던 것 같다. 미국에서 사춘기 시절을 혼자 보내면서 늘 어른 같이 행동해야 했다. 그 당시 가족들이 한국에서 겪고 있었던 아픔들 때문에 가족들에게도 힘들다거나 슬프다는 말을 해본 적이 없다. 항상 긍정적이었고 밝은 모습으로 부모님께 힘이 되고 싶었다. 어쩌면 슬픔이라는 것은 내가 느껴서는 안될 그런 감정으로 치부하고 내 안에 꼭꼭 숨겨 놓았던 것 같다. 그런데 이게 요즘 막 터져버렸다 ㅠㅠ 

얼마 전 집에 잠시 내려 갔을 때 부모님과 함께 'Inside Out'이라는 영화를 봤는데, 이 영화에서 Joy라는 캐릭터를 보며 그의 슬픔을 대하는 자세가 내 모습과 많이 닮았다는 것을 보았다. JoySadness가 감정을 망쳐버린다고만 생각하여 그를 항상 타박한다. 하지만 이내 JoySadness가 감정에 꼭 필요한 존재임을 깨닫고는 슬픔이 하나의 감정으로 잘 작동할 수 있도록 도우며 함께 Riley의 control tower를 꾸려간다. Joy가 깨닫게 된 것 처럼 어쩌면 슬픔이라는 이 감정은 강박적으로 없애야 할 감정이 아니라 나의 일부로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고 가꿔나가야 하는 것이 아닐까. 내 안에 이런 슬픔이 앞으로의 나를 좀 더 공감과 위로의 사람으로 만들어 주었으면 좋겠다. 부끄럽게 늦은 사춘기를 맞은 것 같지만 Riley처럼 나도 이렇게 더 성장하고 있는 것 같다 ㅎㅎㅎ 곧 사라질 것을 알기 때문에 기왕 이런 슬픔을 느낄 거라면 이 시간 동안 노래도 많이 쓰고 생각도 많이 하면서 이 감정을 한 번 누려보아야 겠다. 

아, 슬픔도 이런 면에서는 아름다운 것 같지만 그래도 난 여전히 기쁨이 더 좋다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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